서울 광진구청의 직원 N씨는 올해 1월 1000여만원의 지방세를 체납한 민원인이 상담을 마치고 가면서 슬쩍 놓고 간 신문 뭉치를 펴 보고 깜짝 놀랐다. 폐휴지처럼 대충 둘둘 만 신문지 안에 현금 100만원이 들어있었던 것.
양천구청 직원 H씨는 3월 건축물 사용승인 신청자가 “별 거 아니다”며 황망히 건넨 쇼핑백 속에 10만원짜리 상품권 2장과 고급 양주 1병(30만원 상당)이 든 것을 보고 즉시 클린신고센터에 넘겼다. 서울시가 운영 중인 클린신고센터에 접수된 ‘뇌물 신고’ 사례들을 살펴보면 민원인들의 뇌물 제공 수법과 목적, 대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장 취임 후 20여 차례 금품 유혹을 받았다는 안상수(安相洙) 인천시장의 실토가 몇몇 공무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민원인들의 금품 제공 수법은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 서울 성북구청 직원 L씨는 올해 2월 우연히 의자를 정리하던 중 방석 밑에서 20만원이 든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소방본부의 C씨는 1월 우편으로 전달된 편지봉투를 뜯어보니 10만원권 구두상품권이 들어있었다.
담당 공무원이 사무실을 비운 사이를 틈타 서랍 등에 돈 봉투를 놓고 가거나 담당 공무원의 차량을 확인한 뒤 차 안에 돈 봉투를 넣은 민원인도 있다.
돈을 건네는 명목이나 대상도 다양하다. 보상가격을 적정하게 해 달라는 등 청탁과 함께 건네는 뇌물부터 민원의 신속처리를 요청하는 ‘급행료’, 친절하게 상담해줘 고맙다는 사례금까지 가지각색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의 집요함도 엿보인다. 지난해 2월 서울 서대문구청에 국유재산 매수 신청을 했던 한 민원인은 담당 직원에게 50만원을 주었다가 거절당하자 ‘액수가 적어서 그런가 보다’고 판단했는지 한 달 뒤 300만원을 신문지에 둘둘 말아 건네기도 했다.
금품 공세를 받는 대상도 건축과나 주택과 세무과 등 이른바 ‘목 좋은 자리’뿐만이 아니다. 문화체육과 공원녹지과 문화공보과 사회복지과 민원봉사과 등 거론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서울시가 신고센터를 설치한 2000년 2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접수된 뇌물신고는 모두 376건에 1억402만3000원어치. 이 중 현금이 8799만3000원으로 전체의 84.6%를 차지한다. 물품으로는 상품권이 가장 많고 양주 꿀 조기 인삼 곶감 케이크 넥타이 벨트 립스틱 스타킹 양말 등 다양하다.
서울시 클린신고센터 신고내용신고
기관서울시청 및 산하기관52건자치구307건공사17건금품제공
유형업무 관련 청탁96건감사 표시202건단순 제공78건
신고 최고액은 2002년 2월 성동구청 직원이 “주택재개발과 관련해 민원과 함께 받았다”며 신고한 1000만원. 최저액은 5000원이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