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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강석윤/내신 등급제부터 개선하자

입력 | 2004-09-05 18:47:00


제7차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을 부여하고 학교에 교육과정 편성 운영의 자율권을 확대해 주어 창의적이고 특색 있는 교육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시작돼 올해 고교 3학년생까지 이르러 비로소 전 과정이 완성됐다. 처음엔 비교적 이상적인 교육과정으로 여겨져 기대가 컸으나 대학입시제도와 상충하는 등 여러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대학 입시와의 이율배반이다.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학측이 각각 자기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 놓인 고등학교에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고2부터 시작하는 선택중심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취향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 수강하려면 대입 내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내신등급제를 반영하는 한 학생들은 대다수가 선택하는 과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소수가 선택하는 과목에선 석차등급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계지리, 국토지리, 경제지리 중에서 택일해야 할 때, 세계지리나 경제지리를 한 학급(35명 기준) 정도가 선택한다면 내신 1등급(4%)은 1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국토지리를 5학급이 선택한다면 1등급이 7명이나 나온다. 당연히 학생들은 국토지리에 몰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게 운영될 것이다. 현재 발표된 내신제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소수 인원의 학교가 내신에서 불리한 것도 문제다. 400명 정원의 학교에선 1등급(4%)이 16명이지만 200명 정원 학교는 8명뿐이다. 게다가 그 학교가 특목고나 비평준화지역 우수교라면 불공평의 정도는 더욱 심각하다. 모집 인원이 많은 평준화지역 학교가 그렇지 않은 소수 인원의 학교보다 유리하다는 것은 또 하나의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등급제의 불공평은 다른 모순을 낳는다. 수능에서 500점 만점부터 430점까지가 1등급으로 동점일 수 있는데, 429점부터 2등급이라면 해당 학생은 1점차로 인생의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 학교 내신에서도 100점부터 90점까지가 1등급이고 89점부터 2등급이라 할 때 1등급 10점차는 동점이고 1등급과 2등급간의 1점차는 결정적 불이익이 된다. 해당 학생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해결하기 힘든 난제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새 제도를 도입하려면 신중해야 한다. 많은 공청회와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7차 교육과정과 새 대입제도의 상충성에 대해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한다.

무늬만 자유선택이고 실제 그렇지 못한 현행 7차 교육과정과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발표된 새 대입제도는 시급히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 학생들이 대입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과목 선택이 보장되는 제도로, 그리고 학력차와 인원이 골고루 배려되는 합리적인 제도로 개선돼야 한다.

대학입시는 우리나라 교육 전체의 향방을 가늠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교육부의 정책과 각 대학의 실제 입시가 이율배반적이라면 일선 교육현장에선 파행적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노력이 필요하다.

강석윤 포철고등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