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재계에서 경제 수장(首長)의 목소리가 안 들린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경기부양책 등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이헌재(李憲宰·사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무기력함을 지적하는 말이다.
지난달 30일 열린우리당이 근로소득세와 이자소득세 배당소득세 특별소비세 인하 등 8·30 경기활성화 대책에 감세정책을 ‘깜짝 카드’로 내놓았을 때도 이 부총리의 목소리는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고 재경부 관계자들은 전한다.
예전 같으면 경제부총리가 경제부처 입장을 먼저 조율한 뒤 여당에 ‘통보’해 협의를 거치는 형식을 밟았지만 이번에는 열린우리당 ‘경제통’ 의원들이 감세정책을 밀어붙이면서 막판까지 재경부와 이렇다 할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감세정책을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처리한 것은 재경부가 당정협의 주도권을 갖고 있던 과거의 관행에 비춰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자주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회가 날 때마다 감세정책은 별 효과가 없다던 이 부총리는 당에서 감세정책을 발표한 이후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002년 당시 전윤철(田允喆) 경제부총리 시절에도 국회에서 감세 요구가 많았지만 전 전 부총리가 실효성이 없다면서 이를 끝내 거부해 성사되지 않았다”면서 “경제부총리를 이런 식으로 흔들 경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한 인사는 “이 부총리가 대놓고 아니라고 한 것을 여당에서 밀어붙이면 리더십에 금이 갈 뿐만 아니라 시장에도 혼선이 생길 수 있다”면서 “경제에서는 분권형 의사결정시스템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여당과 청와대에서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