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 직감을 가진 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올해 들어 7개월 동안 환치기를 통해 한국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작년 같은 기간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또 올해 상반기 해외투자동향에 따르면 개인들의 해외 부동산과 서비스업 투자건수는 148건으로 해당 분야 전체 투자건수 266건의 55.6%를 차지했다. 지난해 1년간 개인 투자건수는 179건이었다. 당국의 통계에 잡히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나간 돈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돈은 어디로 가고 있나.
요즘 미국 주요 도시 한인 타운에선 ‘탈남자(脫南者)’라는 신조어가 나돈다고 한다.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온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이들 가운데 부유층이 많다고 한다. 가난한 북한사람은 남한으로 와서 ‘탈북자(脫北者)’가 되고 부유한 남한사람은 미국으로 가서 탈남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탈북자가 돈 벌어 부자가 되면 탈남을 꿈꾸지 않을까.
상황이 심각하다 보니 정부 당국은 뒤늦게 권력기관을 총동원하여 불법이민을 떠난 돈을 잡아내기로 했다.
그러나 당국의 돈 붙잡기는 성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와이어를 타고 빛의 속도로 빠져나가는 돈을 무슨 수로 막으랴. 21세기가 괜히 정보화 사회인가.
더구나 돈은 이념과 인종, 국적을 떠난 등가(等價)의 존재다. 돈은 ‘많고 적음’의 양적 차이만 있을 뿐 ‘좋고 나쁨’의 질적 차이는 없다. 동서고금(東西古今) 어디서나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돈은 항상 보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민첩하게 움직인다. 할 일도 많고 갈 곳도 많은 돈 아닌가.
권력으로 돈을 붙잡기보다는 돈의 불만을 알아보는 게 현명할 듯싶다.
우선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는 돈의 천적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지 않는가. 대통령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제다. 잠깐 숨어 지내면 될 일이다. 경기가 나빠서? 시장경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경기야 언젠가 좋아질 테니 그것도 이유가 안 된다.
아무래도 돈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위험을 느낀 것 같다. 마치 배안의 쥐가 난파의 위험을 알듯이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떼 지어 탈출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떠난 돈’이 감지한 위험이 무엇인지 대충 감이 잡히지만 ‘남아 있는 돈’을 안심시키기 위해 침묵하기로 하자. 돈이 다 떠나가고 나면 가난만 남기 때문이다.
“가난은 자존심을 잃게 하고, 사람을 공포와 비굴함으로 몰아넣는다. 개인의 선택이라면 책임을 져야겠지만, 집단적 선택에 의해 사회 전체가 가난에 처한다면 분명 억울한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공병호, 10년 후 한국)
‘돈의 복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가 왔다.
임규진기자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