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은 올림픽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짜증이 날만한데도 “탁구를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안철민기자
“세계 최강이요? 어휴, 아직 아니에요. 앞으로 숱하게 중국 선수들과 붙게 될 텐데 이기는 경기보다는 지는 경기가 많을 거예요. 계속 도전해야죠.”
2004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승민(22·삼성생명).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본사 사옥으로 찾아온 그의 눈빛은 왕하오(중국)와의 결승전 때처럼 여전히 살아 있었다. 세계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그는 도전자임을 자처한다.
여섯살 때 라켓을 잡았고, 중학교 3학년 때인 열다섯살에 태극 마크를 달아 ‘탁구 신동’으로 불린 유승민은 아테네 올림픽의 가장 큰 수확으로 자신감을 꼽았다.
“그동안 ‘신동’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중국 선수들한테 매번 지는데 신동은 무슨 신동’하고 생각했어요. 이제야 ‘내가 잘 하는구나’하고 인정하게 됐습니다.”
중국 차세대 에이스 왕하오와의 결승전은 80% 이상이 기싸움이었고 심리전이었다.
“경기 전 선수대기실에서 왕하오를 봤는데, 앉아서 다리를 떨고 있더라고요. 또 별로 움직임이 없는 선수인데 그날은 유독 경기 중에 많이 움직이면서 기합도 많이 넣었고요. ‘긴장하고 있구나’ 생각했죠.”
첫 세트는 쉽게 이겼지만 이후 매 세트가 긴장의 연속이었고 고비였다. 2세트를 9-11로 역전패했고, 3세트와 4세트 모두 시소게임 끝에 11-9로 이겼다. 5세트에 또 한번 고비가 왔다. 8-4로 이기다 11-13으로 역전패 당한 것.
“왕하오는 올림픽이 첫 출전인 데다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왕리친을 이겨 금메달에 대한 부담이 컸을 거예요. 저는 결승에 올라온 것만 해도 성공이라 큰 부담이 없었죠. 그런데 5세트에서 8-4로 앞서면서 금메달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실수가 나오는 거예요. 어깨에 힘이 들어간 거죠. 6세트에 들어가면서 계속 ‘부담 없이 하자’고 주문을 외웠죠.”
유승민의 승부근성은 유명하다. 2000 시드니 올림픽 때 18세의 나이로 첫 출전해 단식 1회전에서 탈락한 그는 귀국 후 부모 앞에서 “바다에 빠져 죽겠다”며 고집을 피운 적도 있었다.
그의 승부근성은 ‘양날의 칼’이었다. 엄청난 훈련량을 거뜬히 소화하고 삭발도 불사하는 ‘악바리’지만 스스로 분을 못 이겨 경기를 망치기도 하기 때문.
“올림픽을 앞두고 하루에 공을 몇 개나 쳤는지 저도 궁금해요. 평균 6시간 정도 연습했는데 ‘이면타법’ 대비 훈련은 1시간 정도 했어요. 1시간에 2000개 정도 잡으면 매일 1만2000개쯤 친 셈이죠.”
단식에서 고비가 또 있었다. 렁추안(홍콩)과의 8강전. 사실 유승민은 이철승과 짝을 맞춘 남자 복식에서 메달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복식 8강전에서 러시아 선수들에게 져 탈락한 것. 지고 난 그날 바로 단식 8강전이 있었다.
“렁추안과의 경기에 들어가면서도 때려치우고 싶었어요. 그런데 두 세트를 내주니까 ‘이래서는 안 된다’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다행히 집중력을 되찾아 4-2로 뒤집었습니다.”
그는 다음달 20일부터 중국 쓰촨성 탁구단에 임대돼 11월 9일까지 중국 슈퍼리그에서 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기분이지만 어차피 4년 뒤 베이징에서 올림픽을 하게 될 테니 잘됐어요. 제 기술이 중국 선수들에게 노출되겠지만 그보다 더 많이 중국 선수들을 경험하고 오겠습니다.”
그는 벌써 2008년 올림픽을 내다보고 있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