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거래 침체의 골이 깊다. 정부의 잇따른 규제와 수요자의 심리 위축으로 폐업 위기에 몰린 중개업체도 적지 않다.
5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중개업을 시작한 서울 송파구 오금동 아남공인중개사무소의 임혁상 사장(37)도 요즘 고민이 많다. 그는 “50만명에 달하는 중개업 관련 종사자들이 실업자가 될 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3일 오전 10시. 임 사장은 사무실 문을 열고 매물장부를 살펴본다. 매매 199건, 전세 260건, 월세 135건. 수요자는 없는데 매물은 넘쳐난다.
한숨만 나온다. 매매든 전세든 매물이 20건을 넘으면 ‘빨간 불’이다. 사실상 거래가 중단된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망 고객’ 리스트를 펴고 1시간 동안 전화를 걸어본다. 몇 명 되지 않는 전세 수요자들이다.
매매는 올 3월 아파트 한 채를 중개한 이래 한 건도 거래하지 못했다. 다행히 신혼부부로부터 오후에 사무실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낮 12시. 가까운 음식점의 점심 값은 4000∼5000원. 작년 ‘10·29조치’ 이후 적자가 커져 점심 값도 부담스럽다. 요즘은 걸어서 10분 거리의 분식점에서 3000원짜리 김치찌개로 점심을 해결한다.
오후 1시30분경 신혼부부 전세 수요자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4000만원짜리 전셋집을 구해달라고 했다. 15평짜리 연립주택의 1층도 5000만원은 줘야 하는데….
신혼부부에게 연립주택 3곳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조건이 맞지 않아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들이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에요. 대부분 돈이 없어요.”
오후 3시를 지나면서 임 사장은 인터넷을 뒤졌다. 다른 일거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지난 몇 달간 음식점, 타이어대리점 등 다양한 창업 아이템을 찾았다.
“다른 업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 전업도 쉽지 않아요. 주변 500여개 상가 점포 대부분이 매물로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오후 내내 중개업소에는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았다.
저녁 8시경 퇴근할 채비를 한다. 일이 없다보니 딱히 퇴근 준비랄 것도 없다.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 예전에 비해 퇴근 시간이 빨라졌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두 자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자녀들은 태권도, 영어, 생활체육 등 다니던 학원을 그만뒀다.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적자만 5000만원.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지만 이제 한계인 것 같다. 직원 월급도 두 달이나 밀렸다. 그는 “거래가 끊어지고 돈이 돌지 않으면 서민만 어려워진다는 걸 새삼 느낀다”며 “내 인생이 3∼4년은 후퇴했다”고 말했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다음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의 이야기가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