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이 있자 급기야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가 재판을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가의 사법체계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법은 국가질서의 근간이다. 설령 악법(惡法)이라고 하더라도 개폐되기 전까지는 국민이라면 누구든 따라야 한다. 법질서가 흔들리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노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반국가단체와의 회합통신, 금품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 피의자는 “위헌성과 모순성이 내재한 보안법으로 법정에서 심판받는다는 사실이 무의미하다”고 했다. 대통령이 전날 “보안법은 위헌이든 아니든 악법일 수 있으며,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할 낡은 유물”이라고 한 것과 같은 논리를 편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 분란의 단초를 제공한 셈이다.
대통령은 가능한 한 사회적 논란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일수록 한발 떨어져서 양측이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스스로 접점(接點)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이 다원주의 사회의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집권 2년이 다 되도록 그런 리더십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보안법 존폐 논란만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증폭될 사안이 아니었다. 보혁(保革)을 떠나 국민 대다수는 어떤 형태로든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폭이었는데 이것도 폐지보다는 개정, 보완 쪽이 단연 우세했다. 국무총리와 주무장관인 법무부 장관, 그리고 야당까지 개정을 지지했다.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선 개정, 보완 찬성률이 70%에 가까웠다. 그것이 곧 여론이자 민의(民意)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이런 민의가 국민적 합의(合意)로 바뀔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논의를 독려했어야 했다. 비록 그 민의가 대통령이 말한 ‘역사적 결단’에 미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국민의 뜻이라면 흔쾌히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대법원이 폐지에 반대한 법을 ‘악법’이라고 일축하고, 여당을 향해 폐지를 ‘강권’하는 식으로 엇나갈 일은 아니었다. 그 결과가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대통령의 보안법 폐지 발언 후 민중연대라는 단체의 홈페이지 자료게시판에 ‘김일성 장군 전설집’이 뜨고, 한 퇴직교사 모임은 “현역시절 반공교육을 거부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는 집회를 갖겠다”고 나선 것도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만 보기 어렵다.
퇴직교사 모임은 “보안법이 군사정권 시절, 교과서 내용을 비롯한 교육활동 전반에 걸쳐 교사와 학생들을 반공이데올로기의 초라한 희생물로 만들었다”면서 “앞으로 교육현장의 반공적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한평생 실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었다고는 하나 ‘반공’ 없이 우리가 남북 극한 대치의 냉전시대를 무사히 살아낼 수 있었겠는가. 이런 식의 접근이 역사 자체나, 오늘의 삶을 위해서나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과거’라는 블랙홀로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가고 있고,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는 듯한 양상이다. 경제와 민생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소용돌이의 위력이 워낙 커서 거의 들리지도 않는다. 나라를 이렇게 끌고 가서는 안 된다. 대통령부터 과거에 대한 편협한 해석,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의 독선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파국으로 치달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