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질환인 것처럼 속여 병역을 면제받거나 면제를 시도한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와 연예인 등이 당초 경찰이 발표한 80명보다 훨씬 많은 130여명으로 확인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병역브로커 우모씨(38)가 프로야구 선수 출신 김모씨(29)와 동업을 하기 3년 전부터 같은 수법으로 병역면제를 알선해 온 것으로 드러나 병역비리 연루자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의혹=서울지방경찰청 수사과는 7일 우씨와 김씨의 수첩 내용, 통화내역,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130여명이 병역면제를 시도했거나 면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 가운데 병역법 공소시효(3년)가 끝나지 않은 80여명을 우선적으로 수사하고 50여명에 대해서는 병무청에 수사 결과를 통보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80명 가운데 프로야구 선수는 50명, 프로축구 선수 1명, 연예인 4명, 대학생 7명, 직장인 18명 등이며 프로야구 구단별로는 LG 10명, 삼성과 두산 각 8명, 현대와 롯데 각 6명, SK와 한화 각 5명, 기아 2명 등이다.
경찰은 이들 중 실제로 병역면제를 받은 선수는 30여명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징병검사를 받고 있는 단계였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구속수사 대상자 2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으나 병역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개그맨 신모씨(26)는 지난달 말 이미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7일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가 국내 리그에 복귀한 조진호씨(29) 등 3명을 소환 조사했으며 8일 이들에 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신장질환 조작 가능한가=우씨는 병역면제 판정을 위해 자체 개발한 특수약물을 사용해 3단계에 걸친 징병검사를 통과하도록 했다고 진술했으나 그 내용에 의문점이 적지 않다.
우씨는 경찰에서 “1996년 우연히 기차를 탔다가 옆 사람들이 ‘신장질환자로 속여 병역면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에 착안해 신장염 증상을 연구한 뒤 특수약물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의학과는 무관한 경영학 전공자가 신장질환으로 조작 가능한 특수약물을 개발했다고 보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문제의 약물에 대한 성분분석을 의뢰한 결과 고단백질 성분으로 구성됐다고 밝혔다.
또 의학계에서는 단순히 소변에서 단백질 등이 검출됐다고 해서 곧바로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판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삼성서울병원 신장내과 오하영 교수는 “일시적으로 혈뇨나 단백질이 나오는 것을 신장질환이라고 하지는 않으며 군의관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만약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면 다른 군의관들에게도 판독을 의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김형규(金亨圭) 교수도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 없이 콩팥에 병이 있다고 써주진 않는다”며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상식적으로는 잘 성립되지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범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위층 아들은 없나=경찰은 5일 80여명이 수사 대상자라고 발표하면서 “이들 대부분이 야구 선수이며 일반인도 야구계 인맥을 통해 브로커를 소개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씨가 야구 선수 출신인 또 다른 브로커 김씨와 동업을 하게 된 것은 1999년부터였다. 이 때문에 우씨가 1996년 초부터 3년 동안 야구 선수 외에 고위층 아들 등 다른 사람들을 접촉했는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또 비리 연루자의 규모가 커지면서 우씨와 김씨 외에 다른 브로커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병무청 신검때 도핑테스트 검토▼
병무청 관계자는 7일 “프로 선수들의 병역 비리와 관련해 내년부터 징병 신체검사 때부터 도핑 테스트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도핑 테스트는 소변검사 등을 통해 피검사자의 금지 약물 복용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병역 의무자가 건강상태를 조작하기 위해 특정 약물을 소변에 투입했는지도 알아낼 수 있는 검사법이다.
병무청은 우선 도핑 테스트가 약물에 의한 신종 병역비리를 가려낼 수 있는지를 확인한 뒤 내년에 시범 도입을 위한 예산을 국회에 요청할 방침이다.
병무청은 또 병무행정의 허점을 노출시킨 ‘사구체신염’과 ‘신증후군’ 등 신장관련 질환을 기존 13개 중점관리 대상 질환에 추가하고, 병역 비리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 등을 담은 병역비리 방지 종합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병무청은 이와 함께 프로 선수, 연예인, 고위공직자 및 부유층 자제 등 사회 유명인사 본인과 가족, 친인척의 병역의무 이행 여부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병역법 개정안을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