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에는 위헌논란과는 별개로 일반적인 법 원칙이나 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의심이 드는 규정이 상당수 있다. 법적 타당성과 실효성 공정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도 꽤 있다.》
▽법 규정의 불명확성=법이 정하는 개념은 명확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법이 모호(Vague)하거나 지나치게 광범위(Overbroad)하면 그 자체로 무효라는 판례가 확립돼 있다. 그러나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엔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법조인들은 우선 제2조가 정의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의 유형이 포괄적이라고 지적한다. 즉, 조사 및 판정 과정에서 재량의 폭이 너무 크고 조사위원들의 주관이 개입될 위험도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공격하도록 명령한 자’ 이외에 ‘권유한 자’를 추가하도록 했는데 ‘권유’는 행위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 입증과 반증이 쉽지 않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행위가 현저한 일반 관리’나 ‘민족문화의 파괴·말살에 적극 협력한 자’라는 개념도 다소 애매하고 막연하다.
▽더욱 약화된 방어권=특정인에게 불이익이 되는 공권력의 작용에 대해서는 반론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야 하나 개정안은 이를 소홀히 하고 있다. 오히려 허위진술이나 허위자료 제출에 대한 처벌조항마저 없앰으로써 방어권은 사실상 더욱 약화됐다.
반면 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들의 업무상 비밀누설 금지조항을 삭제한 것은 사료편찬 이전에 조사내용이 공개되더라도 위원회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미확인 추측보도에 의한 여론재판을 사실상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결국 허위사실 유포나 여론몰이에 의한 명예훼손 가능성은 커진 반면 이를 막을 수 있는 견제장치는 거의 사라져 균형을 잃은 입법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조사대상자가 나중에 소송을 통해 구제받는다고 해도 이미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처벌법도 아닌데 동행명령 거부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 것 역시 과중하다. 법원의 출석요구에 불응할 경우에도 통상 소액의 과태료를 무는 정도다.
▽입증과 판정의 문제 등=위원회가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친일행위에 대해 충분하고 명확한 증거자료를 확보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판정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사대상자와 조사기간 등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할 때 진상규명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큰데 과연 그것만을 토대로 판정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민법에서 소멸시효(최장 20년)를 규정하고 있는 것도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사건은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정치권이 인위적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시한을 정해 역사적 사건과 관련인물에 대한 평가에 나서는 것은 중대한 위험을 안고 있다. 소수 위원들의 주관이 개입돼 역사를 왜곡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대 여론이나 시류에 흔들려 평가가 공정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위원 임명을 대통령이 하도록 하고 국회는 동의권만 행사하도록 한 것과 관련해서도 위원회 구성이 집권세력의 입맛대로 이뤄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위원의 자격을 엄격하게 규정한 기존법과 달리 개정안에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라고만 규정한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