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붙잡고 싶은 것이 늘 있다.
작고 소박한 것일수록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애틋하다.
떠남의 계절. 올 가을에 우리는 귀중한 것 하나를 떠나보내야 한다.
강원 정선의 두메산골을 하루 세 번 외로이 오가는 정선선 ‘꼬마열차’다.
증산역을 출발해 정선역을 지나 한 처녀의 애틋한 사랑이 깃든 정선아라리의 고향 아우라지 강을 건너 산골을 비집고 흐르는 송천 물길 따라 이리 굽고 저리 굽은 깊은 골로 들어가 더 이상 달릴 곳 없는 철로막장 구절리역에서 되돌아오는 달랑 객차 한, 두 칸짜리 열차다. 그 이유는 뻔하다.
구들장 한옥에서 보일러 아파트로 주거문화가 바뀐 이후 연탄 땔 사람이 줄어 탄광이 줄줄이 문 닫은 지 10년.
‘개도 만원짜리 지폐 물고 다닌다’할 만큼 돈이 잘 돈던 탄광촌은 몰락을 거듭하다 최근 관광사업을 ‘먹고살기’의 새 화두로 선택했다.
그 바람은 폐광촌은 구절리까지 불어 닥쳤다.
철도청과 정선군 등은 7일 ‘철도관광 인프라 구축 운영에 관한 협정 조인식’을 갖고 정선선을 대대적으로 개편해 내년 3월부터 레일 바이크(rail bike·철로를 이용해 달리는 자전거)와 4칸짜리 새로운 관광열차를 운행하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올겨울이 오기 전에 꼬마열차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 소박한 열차와의 이별
1996년 겨울 어느 날 오후였다. 나는 여덟 살과 일곱 살 난 두 아들과 함께 정선역에서 이 열차에 처음으로 올랐다.
두 손의 엄지와 검지로 꽉 누른 채로 들어올려야 열리는 미닫이 창문, 슬라이드방식의 햇빛가리개, 융단처럼 보드라운 초록빛 시트, 두툼한 도화지를 잘라 만든 기차표, 그것을 펀치로 구멍 뚫어 주던 검표원…. 이 추억의 기차간에서 내 아이들에게 아빠의 어린 시절을 실감나게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당시 정선선 비둘기호 객차는 특별했다. 무궁화호와 달리 지하철 스타일의 좌석이었다. 그래서 맞은편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아름다운 산하를 편안히 볼 수 있었다. 더 정감 있는 풍경은 열차를 버스처럼 이용했던 주민의 일상이었다.
장날인 그날 구절리행 오후 열차에는 할머니가 많았다. 팔다 남은 콩이며 도라지 더덕 등을 싼 봇짐을 바닥에 둔 채 꼬깃꼬깃한 지폐를 한 장 한 장 세는 할머니, 그 채소며 곡식이 든 봇짐을 들추며 즉석에서 흥정하는 여행자들, 철길의 덜컹거림과 가는 귀 먹은 할머니의 되물음 속에 이뤄지는 열차간의 대화, 귀갓길 초등학교 통학생의 재잘거림. 이런 건강한 소음으로 뒤범벅이 된 구절리행 비둘기호 열차간은 도시인에게 귀한 볼거리였다.
‘꼬마열차’라는 애칭이 붙은 것은 이때였다.
○ 오지 주민의 발
증산역에서 출발해 구절리역까지 45.9km에 이르는 정선선이 개통된 것은 1967년. 그해는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성공에 이어 시작한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첫해로 정선선은 탄광의 석탄수송을 위해 건설됐다.
정선선은 주변 광산이 문을 닫은 후에도 오지 주민의 발이 되었다. 아침저녁에는 정선읍내를 오가는 통학기차로, 장날에는 장터를 오가는 장터기차로, 평소에는 마을기차로. 마을버스가 없던 1997년까지만 해도 기차는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1998년 마을버스가 구절리까지 운행되고 통학생도 하굣길에 버스를 이용하며 고정승객이 점차 줄자 적자폭이 확대됐다. 정선선이 철도청의 애물단지 1번에 등록된 것은 그 때문이다.
2000년 11월 14일 오후 7시15분. 역무원도 없이 불만 덩그러니 켜진 썰렁한 간이역 구절리역에서 출발한 꼬마열차는 마지막 비둘기호 열차였다. 국내 유일의 이 비둘기호 열차는 1966년 운행을 시작한 지 34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열차가 너무 낡아 보수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요금이 너무 낮아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열차는 지금 철도박물관에 있다.
○ 비둘기호→통일호→무궁화호
다음날 정선선 꼬마열차는 ‘통일호’로 한 단계 승급됐다. 디젤엔진으로 발전을 해 객실에 보내주는 발전차가 기관차에 추가됐고 객차의 실내도 고급스러웠다. 좌석도 극장식으로 바뀌었다. 발전차 덕분에 비둘기호에 있던 석탄난로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한겨울 꽁꽁 얼었던 손발을 녹여주던 난로, 그런 난로가 놓인 열차. 다시 한번 타보고 싶은 추억의 열차다.
이 통일호 열차도 오래가진 못했다. 아니 이번에는 아주 꼬마열차의 모습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 변화가 오고야 말았다. 주말과 휴일이면 여행객들로 붐비는 인기 있는 관광열차였지만 오히려 그 점이 이 꼬마열차를 몰아낸 셈이 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관광객이 늘자 꼬마열차를 관광열차로 개조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객차를 리노베이션해 ‘카페열차’라는 새 스타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선군은 거금을 들여 무궁화호 열차를 개조했다. 차창은 커다란 통 유리창으로 바꾸고 객실에는 걸터앉아 음료수를 들면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스탠드바를 설치했다.
그러나 반응은 차가웠다. 기껏 찾아왔더니 꼬마열차는 없고 서울 압구정동에나 어울릴 첨단의 도시풍 카페열차가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후 한 번 더 변화가 왔다. 한국고속철도(KTX) 개통과 더불어 이름이 바뀌었다. ‘통근열차.’ 이 멋없는 이름을 어디 ‘꼬마열차’에 비길까. 아직 역무원들도 ‘꼬마열차’라는 이름을 거의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사라지는 추억의 열차
○ 레일 바이크에 거는 기대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꼬마열차를 완전히 철도에서 들어내는 계획이 선 것이다.
인구 4만5000명에 불과한 정선에서 ‘통근열차’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우라지∼구절리역 한 구간 7.2km만 해도 연간 철로 보수비만 2억5000만원이 들지만 운임 수입은 2000만원에 불과하다. 적자노선이 살아남을 길은 없다.
그 참에 정선군에 의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기됐다. 정선선 철로의 관광자원화다. 아우라지∼구절리 한 구간은 꼬마열차 대신 레일 바이크를 운행하고 나머지 구간(증산역∼아우라지역)도 객차 네 칸짜리 관광열차도 대체하자는 것이다.
불어나는 적자에 고심하던 철도청은 이를 받아들여 레일 바이크와 네 칸짜리 관광열차를 이미 주문했다. 운영 전반을 맡게 될 KTX관광레저측은 “레일 바이크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정선에서도 관광 진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 네 칸짜리 관광열차도 전체를 투명유리로 만든 전망용 열차와 지붕 없는 무개열차,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입석식 열차, 카페식 열차로 구성해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라는 것.
어쩌면 작고 보잘 것 없는 꼬마열차보다는 유럽풍 레일 바이크나 멋진 관광열차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추억의 열차는 아닌 듯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정선의 고즈넉한 자연풍광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정선선 철로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그것은 추억의 향기가 피어오르는 예스러운 꼬마열차 여행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다시는 만나 볼 수 없게 되기 전에, 이 가을 추억을 만들러 꼬마열차를 만나러 가자.
◇정선선 철도 △총연장=45.9km △이용방법=청량리↔강릉 열차 이용 시 태백선(제천↔백산)의 증산역에서 내려 갈아탄다. △노선=증산∼별어곡(6.4km)∼선평(13.7km)∼정선(22.6km)∼나전(32.6km)∼아우라지(38.7km)∼구절리(45.9km). 증산 정선은 보통 역, 별어곡 선평은 간이역(역무원 1명만 근무), 나머지는 무배치 간이역(역무원이 근무하지 않음). ◇문의 ①증산역=033-591-1069 ②철도고객센터=1544-7788
◇패키지여행 상품
정선장(끝자리가 2와 7인 날 열림), 꼬마열차 여행상품.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글=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사진=강병기기자 arche@donga.com
▼탁 트인 전경…아늑한 공간…정선관광열차 9월 2일 첫 ‘기적’▼
통 유리로 외벽 전체에 창을 낸 전망 좋은 객차, 원목마루에 원목테이블과 초록색 소파를 갖춘 반투명 유리벽의 아늑한 칸막이 공간, 음향시설까지 갖춰 간단한 행사도 치를 수 있는 이벤트 칸, 음료와 스낵을 즐길 수 있는 카페 칸….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관광전용’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열차가 다음달 2일부터 서울(청량리역)과 정선 논스톱 노선에 투입된다. 소요시간은 4시간, 운행은 정선장날(끝자리가 2와 7인 날)에만 한다. 요금은 새마을호 수준. 승차인원 198명. 이 열차는 또 서울 야경 순환 노선과 정동진 해돋이 열차 관광의 일부에도 투입된다.
이 열차는 철도청이 KTX 개통으로 일선에서 퇴역한 무궁화호 특실 칸을 개조해 외관과 실내를 완벽하게 새롭게 꾸민 관광전용열차. 개조하는 데 든 시간은 8개월, 비용은 9억원 정도. 운영은 철도청과 롯데관광이 합작투자해 설립한 KTX관광레저가 맡는다.
예매 및 발매는 전국 국철 역(철도고객센터 1544-7788) 및 KTX관광레저(02-393-3100)
관광전용열차 운행 계획
정선5일장환상의 서울 야경순환열차스위치백&정동진 해돋이 열차기타(기업대상 판매)운행일(날자의 끝자리 )2·7일4·9일5·10일3·8일운행구간청량리↔정선서울∼일영∼의정부∼청량리∼서울청량리∼정동진∼강릉구간 주문 판매운행 개시10월 2일9월 19일10월 5일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