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에서 영화감독으로서 느끼는 고민을 담은 영화 ‘섹스 이즈 코메디’.
리얼 섹스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카트린 브레야 감독은 종종 파트리스 세로나 레오 카락스 같은 감독들과 동종으로 분류되곤 하지만 전투적인 여성주의자라는 측면에서 확실하게 비교되는 인물이다. 솔직히 말해 브레야의 영화는 남성들에게, 때론 여성들에게조차 생경함을 넘어선 불편함과 거부감을 준다. 어떻게 보면 그건 단순하게 노출의 수위가 너무 높거나 혹은 지나치게 직접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향해 대책 없이 ‘강공’을 펼치는 이 여성감독이 섹스를 다루는 태도 그 자체 때문이다.
과장하면 브레야 감독은 섹스에서의 문제점 해결이 세상을 바로잡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가 영화를 통해 이 땅의 성적, 계급적 평등을 꿈꾸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 종종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로망스’와 ‘지옥의 해부’(원제 ‘지옥의 체험’), 그리고 최근 국내에 소개된 ‘팻걸’과 ‘섹스 이즈 코메디’에서 줄기차게 남녀의 성기를 보여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성의 성기보다는 남자들의 굵고 단단하게 발기된 성기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하드 코어 포르노에서나 볼 수 있는 이 극단의 남성성을 통해 브레야는 섹스라는 것, 혹은 우리가 흔히 섹스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저 오도된 환상이거나 혹은 수많은 허위의식의 근본일 뿐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엄청난 크기의 성기를 스크린 가득 보여줄 인물로 이탈리아의 유명 포르노 배우 로코 프레시디를 캐스팅한다. 프레시디는 ‘로망스’ ‘지옥의 해부’를 통해 브레야의 영화적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카트린 브레야 감독
브레야 감독이 연출하는, 환상도 없고 낭만도 없는 리얼 섹스 장면을 보는 것은 일종의 끔찍한 경험이다. 다분히 폭력적인 느낌조차 갖게 하는 이 장면들이 충격을 주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섹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섹스는 이렇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대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상대 여성의 질속에 자신의 성기를 집어넣는 것밖에 없다.
‘팻걸’에서 청년 페르난도가 주인공 소녀 엘레나를 정복하기 위해 침대 위에서 끙끙대는, 무려 25분이나 끄는 롱테이크 장면을 보라. 숨겨져 있긴 하지만 남자들의 욕망은 페르난도보다 좀더 가학적이다. 결코 순진하지가 않다.
많은 남성은 익명성을 빌려 여성 한 명에 대한 집단강간의 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로망스’에서 의학도들이 가운을 입고 주인공 여성의 임신 여부를 테스트한다며 돌아가면서 그녀의 질 속에 손을 집어넣는 모습은 영화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장면의 하나다.
브레야 감독은 이 장면을 보여준 뒤 여주인공을 학대했던, 오히려 침대에서 그녀의 욕망을 달래주지 않고 역설적으로 성적 권력을 주도했던 남편을 가스 폭발로 날려버린다. 남성들에 대한 브레야의 분노와 세상의 남녀 문제에 대한 그녀의 해결책은 거의 오사마 빈 라덴 수준이다.
곧 개봉될 예정인 ‘섹스 이즈 코메디’는 어떤 의미에선 좀 다행이다 싶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는 ‘로망스’에서 ‘팻걸’까지 도발적인 영화를 찍어 온 감독 자신의 얘기, 베드신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더 나아가 영화가 만들어 내는 진실과 허구의 간극에 선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 영화 속 영화감독 잔느(안느 파릴료)는 감독 본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어찌 됐든 관객들은 또 한번 브레야가 찍어대는 커다란 남성 성기를 목격할 것이다. 그런 장면들에 이제 익숙해졌다면 아마도 당신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상의 문제에 대해 좀더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장면들이 지겨워졌다면 이미 그 세상의 문제를 한 가지씩 풀어 나가고 있는 단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장면들이 공포스럽고 혐오스럽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와 학습이 필요한 수준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브레야의 영화는 세상을 이해하는 일종의 바로미터인 셈이다. 편견 없이 브레야의 영화를 볼 것, 가능하면 한창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이 함께 이 영화를 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16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c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