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가 보유한 국내 유일의 반잠수식 시추선 두성호가 시추하는 모습. 두성호는 1984년 건조된 이래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80회가 넘는 시추에 성공했으며 1998년 7월 한국 최초의 가스 유전인 ‘동해1가스전’ 시추에 성공하기도 했다. 사진제공 한국석유공사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자매지인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는 7월15일 “한국이 중국의 동의 없이 서해 대륙붕에서 석유탐사를 진행해 중국의 해양주권 및 권익에 피해를 줬다”고 보도했다. 그에 앞서 한국석유공사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7월초 전북 군산 앞쪽의 2광구 일대 대륙붕 300km²에서 석유탐사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탐사가 진행 중인 2광구는 한국과 중국의 대륙붕 가상경계선으로부터 우리 해역 쪽으로 40km 이상 들어온 곳. 유엔이 정한 해양법에 따라 해상 국경을 구분한다면 중국이 문제 삼은 지역은 엄연한 한국 수역이다. 그런데 왜 중국이 발끈했을까.》
● ‘바다 삼국지’ 한중일의 대륙붕다툼
서해부터 제주 남쪽 동중국해까지 펼쳐진 대륙붕에는 적지 않은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중일 삼국이 ‘바다 삼국지’라고 일컬어질 만큼 대륙붕 문제로 수십 년 간 치열한 신경전을 계속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2001년에도 한국석유공사의 탐사선이 2광구에서 탐사를 하다 중국 해군함정의 경고와 방해로 배를 물린 일이 있다.
대륙붕을 둘러싼 한중간 갈등의 역사는 길다. 1973년 3월 2광구 조광권자였던 걸프사가 시추작업을 하다 유징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포함이 시추선 1마일 근처까지 접근해 사흘 동안이나 무력시위를 했다.
중국은 최근 더욱 강경해지고 있다. 시사주간지 요망동방주간(瞭望東方週刊)은 8월 초 “한국이 주장하는 중간선 원칙은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서해 35만km² 중 25만km² 이상을 중국 영토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경사지리연구센터 리궈창 부주임은 7월 22일자 국제선구도보에 “중국 해군은 영해의 안정을 지키기 위한 순시를 강화하고 유사시 무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썼다.
● 상충하는 두 가지 판단근거가 불씨
1958년 제1차 유엔해양법회의에서 채택된 대륙붕조약에 따르면 대륙붕의 영유권은 그 대륙붕이 시작된 나라에 귀속된다. 이른바 자연연장설이다.
그러나 1982년 발효된 유엔해양법협약은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지형이 아니라 거리를 기준으로 바다를 갈랐기 때문이다. 연안에서부터 200해리까지를 연안국이 독점적으로 경제적 권리를 갖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정한 것. 바다 폭이 좁을 경우엔 가상의 중간선을 경계로 삼도록 했다.
● 자연연장설로 얻어낸 한일대륙붕협정
1970년 6월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도 남쪽 8만km²를 제7광구로 정하고 한국령으로 공식 선포했다. 거리상으로는 일본에 더 가까운 곳이라 일본은 즉각 “경제지원을 중단하겠다”며 반발했으나 한국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1972년 일본이 “한일간의 중간선에서 일본 쪽으로 넘어온 부분은 양국이 50%씩 지분을 갖고 공동개발하자”고 제의한 것.
한국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1974년 한일대륙붕협정이 맺어진다. 일본이 꼬리를 내린 것은 제주도와 중국 대륙에 붙어있는 7광구의 해저지형 때문이었다. 일본과 7광구는 깊이가 8000m에 이르는 ‘오키나와 해구’가 갈라놓고 있다. 당시까지 지배적 이론이었던 자연연장설로 볼 때 일본이 결코 유리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 서해대륙붕 3분의2 토사로 뒤덮여
그러나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는 자연연장설이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서해는 전체가 하나의 대륙붕인데다 대륙에서 흘러나온 토사가 대륙붕의 3분의 2 가량을 덮고 있다. 중국은 이를 근거로 대륙붕의 3분의 2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이를 피하려면 한국이 자연연장설을 포기하고 중간선을 기준으로 하는 유엔해양법을 따라야 하나, 그 경우엔 7광구가 문제다. 2028년 한일대륙붕협정 기간이 만료되면 일본이 다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일 양국은 1998년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어업협정을 맺었는데, 이 협정에서 한국은 7광구의 대부분을 일본 수역으로 인정했다. 그 결과 현재 7광구는 바다 아래 대륙붕은 양국의 공동관할구역이나, 어장은 일본의 단독관할구역이 됐다.
● 그렇다면 석유와 가스는 누구 걸까
대륙붕 영유권 다툼의 본질은 대륙붕에서 채취한 자원의 소유권이다. 한국이 2광구에서 석유를 시추했을 때 시추봉을 꽂은 곳이 한국 땅이라 해도 거기에서 나오는 석유까지 모두 한국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석유매장지역은 경계를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당시 쿠웨이트는 국경선 부근에서 석유를 채굴했는데, 석유매장지역이 자국 영토에 걸쳐있다며 전쟁을 시작했다.
중국도 2광구에서 나오는 석유의 매장지역이 자국 대륙붕까지 걸쳐있다고 주장하고 나설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현재 가스와 석유를 채굴하고 있는 7광구 서쪽 핑후(平湖) 유전과 춘샤오(春曉) 유전에 대해 우리도 비슷한 논리로 반박할 대목이 있다. 우리가 2광구 유전을 보호할 수 있는 유력한 협상카드인 셈이다.
● 유엔해양법상 중국보다 한국이 유리
서해 대륙붕 문제는 전적으로 우리 정부의 외교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경희대 김찬규 명예교수(국제법)는 “논리가 부족한 중국이 무력으로 서해의 지배권을 확보하려 할 수도 있다”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국의 공식입장이 무엇인지 설명을 요구하고 우리의 주장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외교적 노력을 적극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은 자연연장설에 입각한 대륙붕조약보다는 거리를 기준으로 하는 유엔해양법협약이 국제적으로 공인되고 있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한국이 유리한 상황이다. 중국과 9년째 협상을 하고 있는 우리 정부도 서해에 관한 한 등거리선, 즉 중간선 안쪽은 우리 영토라는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태도다.
아울러 7광구의 한일대륙붕협정 기간만료에 대비해 이곳의 연고권을 최대한 확보해 놓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방치해 온 7광구에 정부가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을 주문한다. 마냥 손을 놓고 있으면 일본과의 재협상에서 연고권을 주장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일본이 줄기차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온 덕에 어업협정 때 한국으로부터 많은 양보를 얻어낸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