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거는 바람에 한중간 쌀 협상이 난관에 빠졌다. 이에 따라 정부도 쌀 협상의 방향을 ‘관세화 유예’에서 ‘관세화를 통한 전면 개방’ 쪽으로 바꾸는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화가 이뤄지면 수입량이 늘어나 농민의 피해가 예상된다. 하지만 관세화 유예 때보다 피해액이 얼마나 커질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관세율과 환율, 쌀 소비량 추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9일 농림부와 외교통상부 등에 따르면 중국은 한국과 가진 세 차례의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에 대한 조건으로 의무수입 물량과 자국 쌀의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요구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중국 정부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쌀 이외 농산물에 대한 관세율을 낮추고 검역 절차를 완화해 달라는 등 쌀 협상을 다른 품목과 연계하려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과거 마늘분쟁에서 한국산 휴대전화기의 중국 수출과 연계해 중국산 마늘의 한국 수출을 늘리는 데 성공했던 사례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서진교(徐溱敎) 연구위원은 “(중국은) 한국 정부가 국내 농민들의 반발을 의식해 ‘관세화를 통한 개방’을 절대로 선택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며 “이를 이용해 터무니없는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재길(李栽吉) 외교통상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대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관세화를 통한 쌀 수입을 유예하는 쪽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나 상대국의 요구조건이 과도할 경우 실리 확보 차원에서 정부 입장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관세화를 통한 개방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 전국농민연대 등으로 구성된 ‘우리 쌀 지키기 식량주권수호 국민운동본부’는 10일 전국 100여개 시군에서 100만 농민대회를 개최하는 등 본격적인 쌀 개방 반대운동에 들어가기로 했다.
반면 정부는 10일(현지시간) 미국과의 쌀 4차 협상을 위해 이 대사를 수석대표로 한 협상단을 미국 워싱턴에 파견했다. 14일에는 중국과의 쌀 협상이 시작된다.
농업계 추천으로 협상단에 동행하는 경북대 김충실(金忠實·농업경제학) 교수는 “관세화 유예에 따른 상대국의 요구 수준이 매우 높고 다양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달 중 여야 정당과 농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농업협상지원단’을 가동하고 상대국의 요구 수준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