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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칼럼]미국은 ‘9·11’에서도 배운다

입력 | 2004-09-09 19:03:00


9·11테러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다. 진주만 공습 이후 처음으로 미국 영토가 공격당한 데 따른 충격은 미국 국민에게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올해 대통령 선거전에서 외교 안보 분야가 베트남전쟁 이후 오랜만에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이 경험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최근 미국의 안전보장 관련 지출은 50%나 늘었다. 이 분야의 예산이 이토록 단기간에, 이토록 급격히 증가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처음이다.

9·11테러는 어떤 사건인가. 왜 테러를 막을 수 없었는가. 어디에서 어떤 교훈을 배워야 하는가.

미 의회의 위촉으로 구성된 ‘9·11테러 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는 이런 물음에 정면으로 답한다.

보고서는 “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은 사전에 테러를 감지할 수 있었던 호기를 10번이나 놓쳤다”며 각 정보기관을 총괄 지휘하는 ‘국가정보국장’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그때 ‘4가지 실패’가 있었다. 상상력, 정책, 능력, 경영의 실패다.

상상력의 실패. 미국의 민간 비행기를 납치해 흉기로 삼는다는 기책(奇策)은 상사가 시키는 일만 처리하는 데 익숙한 관료들의 머리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렇다면 상상력의 주입을 일상화해 관료기구가 이런 발상에도 적응토록 하는 건 어떨까. 예컨대 가상의 적이 되어 늘 미국 공격을 연구하는 ‘레드 팀’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상상력의 결여는 상대방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무관심에서 기인한다. 2002년 미국의 전체 대학 중 아랍어로 학점을 딴 학생은 6명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세계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과 미국에 대한 세계의 집착이라는 ‘문화적 비대칭성’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우리에게 아프가니스탄은 매우 먼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알 카에다는 미국을 아주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글로벌화한 것이다.”

경영의 실패. 부서간의 영역 다툼이 치열해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인간적, 관료적인 벽이 형성됐다. ‘국가정보국장’의 신설은 그 벽을 뛰어넘기 위한 방책으로 나왔다.

하지만 부작용은 없을까. 국장은 대통령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될지 모른다. 그게 알 카에다의 테러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보장도 없다. 과잉방위가 안 좋은 것처럼 과잉기구도 좋지 않다. 본래 정보기구의 총괄과 지휘는 백악관의 업무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그걸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250만 페이지를 숙독하고, 세계 10개국 1200명과 인터뷰했으며, 각료 등 160명을 공청회에 불렀고, 대통령과 부통령의 얘기도 들었다. 당시 상황의 재현과 적확성 등을 감안할 때 이 보고서는 조사보도의 금자탑이라 할 만하다.

일본에서 9·11테러와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런 보고서가 나올 수 있을까. 방대한 정보, 충실한 데이터, 의회의 조사능력, 그리고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의 완수….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90년대 장기불황, 북한의 일본인 납치 등에 대해 일본 정부와 국민은 자신의 손으로 진상을 밝히고 그것에서 교훈을 얻는 보고서를 한번도 내놓은 적이 없다.

실패에서 배우는 힘을 보유한 국가냐, 아니냐의 차이는 나라의 성쇠를 결정한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