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들의 가슴에 묻힌 '영원한 산 사나이'
"여기는 정상, 더 오를 데가 없다. 본부 나오시오…."
1977년 9월15일 낮 12시50분.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날아든 무전 교신에 국내 산악인들은 흥분했다. 한국원정대 고상돈 대원이 나라로는 8번째, 등반팀으로는 14번째로 에베레스트 산정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오전 5시30분 제 5캠프를 출발한지 7시간20분만이었다.
온 몸이 마비된 채 무의식 상태에서 앞만 보고 나아가던 한국 에베레스트원정대 고상돈 대원은 뒤따르던 셰르파 펨바 노르부의 외침에 흠칫 발걸음을 멈추었다. "거기가 정상이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모든 것이 발 아래로 보인다'는 감격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는 정상에 1시간 정도 머물면서 에베레스트 등반에 대비해 설악산에서 동계훈련을 받다 눈사태를 만나 숨진 동료 최수남 송준송 전재운의 사진을 만년설에 묻었다.
당시 열악한 장비로 악전고투를 거듭해온 원정대는 1차 공격조였던 박상렬 부대장이 28개의 산소통을 다 쓰면서도 정상 앞 100m 지점에서 무릎을 끓자 등정을 낙관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정상 기슭에서 프랑스 원정대가 버리고 간 신품 산소통 12개가 기적처럼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2002년 6월16일에는 에베레스트 청소작업을 벌이던 다국적 산악인들이 고상돈 원정대가 사용했던 주황색 깃발을 발견해 국내 산악인들은 다시 한번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기도 했다.
79년5월 알래스카의 빙봉 매킨리 등정에 나섰던 고상돈씨는 같은 달 29일 정상 정복에 성공했으나 하산하던 중 빙벽에서 추락해 '영원한 산 사나이'로 산악인들의 가슴에 묻혔다.
♣'제3의 극지' 에베레스트
이 행성(行星)의 최고점 에베레스트. 해발 8848m. 대기권을 송곳처럼 찌르고 치솟아 올라 남극 북극과 함께 '제 3의 극지' '죽음의 지대'로 불린다.
'눈의 거처'를 뜻하는 히말라야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는 8000m 이상의 봉우리를 여럿 거느리고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신령스러움으로 인간을 압도한다. 그래서 네팔 사람들은 에베레스트를 '사가르마타'(세계 어머니의 신)로 부르고, 티베트에서는 '초모룽마'(대지의 여신)로 떠받들고 있다.
영국이 인도에서 본격적인 식민지 정책을 펴나가던 1849년. 대대적인 히말라야 측량사업을 벌였던 영국은 가장 높은 봉우리를 발견하고 초대 측량국 장관이었던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 이 산을 에베레스트로 명명했다.
그래서 혹자는 에베레스트란 이름에는 인간의 오만(傲慢)과 인도의 슬픈 식민 역사가 배어있다고 말한다.
제트기와 눈을 맞추는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의 공기 농도는 해수면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이곳에 몰아치는 강풍은 시속 1백20노트.
희뿌연 하늘 속에 시야를 가리는 가파른 빙벽. 그 사이사이로 깊게 갈라진 상처를 드러내듯 '눈 지느러미'가 수직으로 흘러내린다. 생명체는 이곳에서 영양분의 손실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고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팔과 다리는 막대기처럼 달라붙는다.
♣그들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가
그런데도 왜 에베레스트인가.
등반가는 어쩌면 이 거대한 빙벽에 서식하는 이끼와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줄에 묶인 채 자신을 내던지며 그 해답을 찾고 있는.
1924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다 실종돼 75년이 지난 뒤에야 시신이 발견됐던 조지 말로니는 왜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당시 시신과 함께 발견된 코닥 카메라는 그의 에베레스트 등정 여부를 밝혀줄 결정적인 증거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으나, 결국 사진현상에 실패해 "그는 과연 에베레스트에 올랐는가, 오르지 못했는가"라는 의문만을 남겼다.
1978년 최초로 산소호흡기 없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던 이탈리아의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로체봉을 마지막으로 8000m가 넘는 산을 모두 등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야망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산이 얼마나 높고 험준하며 가혹한지 알고 싶을 뿐이다. 그 거역할 수 없는 충동에 이끌리는 것이다."
1996년 5월10일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다 동료 4명을 잃은 작가이자 등반가인 존 크라카우어. 국내에도 번역된 에베레스트 조난기 '희박한 공기 속으로'란 책에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결국 내가 찾는 것은, 뒤로 남겨놓고 온 어떤 것이라는 걸 깨닫기 위해,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것은 아니었던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