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하고 쫀득한 세계 지리 이야기/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노태영 옮김/215쪽 8000원 푸른숲
논술은 대비하기 힘든 시험이다. 학교 시험처럼 출제 범위가 있지도 않고 대학수학능력시험처럼 과목별 학습량이 나뉘어 있지도 않다. 그래서 논술에 대비하는 학생들은 늘 막막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리학은 논술을 위한 좋은 안내자다. 지리학은 역사 정치 경제 철학 지질학 물리학 등 다양한 지식이 동원된 종합 학문이다. 지리 공부는 은연중에 여러 학문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울 뿐더러 사회와 문화 현상을 이해하는 배경지식을 제공해 준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지리를 ‘중핵과목’으로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 소개할 ‘말랑하고 쫀득한 세계 지리 이야기’는 지리학의 참맛을 잘 살려낸 청소년 도서다.
이 책은 지질학과 기후에서부터 지도 제작, 오대양 육대주에 대한 설명까지 지리학의 주요 내용을 빼곡히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암기사항’이기보다는 ‘사색거리’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단순히 지리 지식 나열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의 사회 역사적 파장까지 함께 생각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프리카 대륙에는 배를 댈 만한 곳이 드물지만 아메리카에는 접안(接岸)하기 좋은 해안이 많다는 사실을 소개하면서, 저자는 이것으로 아프리카보다 아메리카의 개발이 빨랐던 이유를 풀어낸다. 더구나 유럽의 대부분 지역이 바다와 수백km 거리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까지 알고 나면, 독자는 서구의 식민지 쟁탈전에 대한 새로운 혜안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슬람 세력이 동방의 무역로를 막자 유럽은 새 루트를 찾아 대항해에 매달렸지만, 자족(自足) 상황이었던 중국은 굳이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 등을 통해서는 지정학적 상황의 중요성이 새삼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현안들을 풀어갈 만한 참고자료를 던져주기도 한다. 행정수도, 사법수도, 입법수도라는 3개의 수도가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 멕시코시티 같이 정치적인 이유로 건설된 도시 이야기 등을 따라 가다보면 어느덧 독자들은 우리의 신행정수도 논란에 대한 가닥을 스스로 잡아 갈 수 있을 터이다.
나아가 사려 깊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세계화와 우리’라는 근본적인 물음에까지 이르게 된다. 근동 중동 극동 아시아라는 말은 유럽의 관점에서 세상의 위치를 파악한 용어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 “대한민국은 극동아시아에 위치한다”라고 여긴다. 식민문화 청산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이 같은 서구중심주의부터 제거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읽고 나면 고민거리가 많아지는 책이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