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넵의 비밀편지/아지즈 네신 글 최정인 그림 이난아 옮김/312쪽 9000원 푸른숲(초등 고학년∼중 3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터키 동화. 터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아지즈 네신이 1967년 발표한 풍자동화로 지금까지 모두 43쇄가 발행된 터키의 스테디셀러다.
앙카라로 전학 간 소녀 제이넵과 이스탄불에 살고 있는 소년 아흐멧이 주고받는 편지글 29편을 엮었다. 초등 5학년인 이들은 서로에게 있었던 중요한 일을 편지에 써 보내기로 약속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특별한 사건을 전한다.
이 사건들은 저자가 신문기자 출신인 데서 짐작할 수 있듯 하나같이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게 묘사된다. 특히 아이들에게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어른의 허위의식이 동심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장학사가 오던 날, 아흐멧의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예상 질문의 답을 외우도록 한다. 미국은 몇 년에 발견됐나,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이스탄불은 누가 정복했나 등등. 아흐멧은 밤에 잠꼬대를 할 정도로 열심히 외웠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장학사가 질문 순서를 바꿨는데도 외운 순서대로 대답한다.
“너 몇 살이니?” “1492!”
“이스탄불은 누가 정복했지?” “아버지.”
“이스탄불을 누가 정복했냐고 물었다! 네 아버지가 누구냐?” “미마르 시난.”
담임선생님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근 가고 새 담임선생님이 이것저것 묻더니 옛날에 배운 것은 모두 잊으라고 한다. 아이들은 틀린 답을 했을 때 무조건 예전 담임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 줬다고 대답해 이 지시를 유용하게 이용하지만 아흐멧에게 이 일은 쉽지 않다.
새 담임선생님은 아흐멧에게 학예회 날 준비해 뒀던 시 ‘양’ 말고 ‘나의 조국’을 외우라고 하지만 무대에서 새로 외운 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무대 뒤에서 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귀띔해 주면 나는 선생님한테 들은 만큼 ‘나의 조국’을 읊고 그 다음은 ‘양’을 읊었어.”
◇추억의 학교/조반니 모스카 지음 김효정 옮김/217쪽 7000원 우리교육(중 1∼고등 3년)
이탈리아의 학교 이야기다. 아지즈 네신처럼 언론인 출신이지만 교사생활을 한 저자는 어른의 이중성과 보수적인 교육방식을 풍자하면서도 동정적이다. 실제로 이 책은 5년 동안의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토대로 쓴 1940년 작품이다.
스무 살에 임시교사 임명장을 주머니에 넣고 초등학교에 처음 부임한 모스카는 개구쟁이들이 모인 악명 높은 5학년 C반을 맡게 된다.
교실에 들어선 모스카에게 40명의 반 아이들은 새총을 겨누는데 마침 파리가 윙윙거리며 나타난다. 모스카는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선생님을 맞힐 것이냐, 파리를 맞힐 것이냐 갈등하는 것을 알아채고 악동대장에게 “한방에 저 파리를 날려 버릴 수 있느냐”고 묻는다.
악동대장이 실패한 뒤 새총을 건네받은 모스카는 학창시절 실력을 되살려 파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 간단히 아이들을 제압한 모스카는 금세 그들의 친구가 된다. 핥아먹던 과자를 선물하는가 하면 꽃가게에서 가격표가 달린 꽃을 훔치기도 했던 마르티넬리, 굴렁쇠를 가지고 놀고 나비를 쫓으며 노는 로마시대 아이들을 그린 론코니….
사진제공 우리교육
장학관은 론코니에게 “로마시대 아이들은 웃지도 않고 머리에 작은 철모를 쓰고 단검을 흔들면서 놀았다”고 꾸짖지만 아이들과 친구가 된 교사는 겨울나무에 화려한 꽃을 그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학부모들의 촌지를 추억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머니들은 선물꾸러미를 책상에 두고 교사는 못 본 척하지만 속으로는 “뭐가 들어 있을까?” 궁금하다.
위엄 있는 태도를 보이던 교사는 문을 닫자마자 선물꾸러미로 달려들고 그동안 문 뒤에서 엿듣던 동생들을 불러 풀어 본다. 케이크나 술병이 있으면 그 어머니를 칭찬하며 작은 축제를 벌이고.
가난한 동료교사를 추억하는 부분에서는 코끝이 찡해진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그 수학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수학문제를 내 주면서 포도주의 가격을 셈하도록 한다. 수학 선생님인 안토니오 가르비니는 “서둘러, 얘들아” 하고 부탁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서둘렀다. 해당하는 가격이 나왔다. 가난한 교사도 2L나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싼 가격이었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