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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홍준형]‘병역비리’ 또 미봉책인가

입력 | 2004-09-12 19:31:00


프로야구 선수들의 집단적 병무비리 문제가 연예계로까지 확산되는 등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소변검사를 조작해 사구체신염 등의 질환을 위장하는 수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캠페인만으로 해결 안 돼▼

또다시 가진 자들의 도덕적 파탄이 도마 위에 오른다. 병무비리는 힘 있고 가진 자들의 죄지, 힘도 돈도 없는 서민들의 문제는 아니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도층이나 프로야구선수, 연예인 같은 ‘가진 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병무비리는 광복 이후 가장 고질적이고 일상화된 우리 사회 부패구조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거기에는 군 복무로 전성기 때의 선수생활이나 연예활동이 중단되거나 좌절되는 것을 피하려는 당사자들의 우려, 특히 소득상실의 두려움과 이를 이용해 교묘한 방법으로 병역면제 판정을 얻어 내주겠다며 접근하는 전문 브로커들의 계산, 이를 가능케 하는 징병검사제도의 허점과 병무청 주위의 비리 커넥션이 작동한다.

그런데 병무비리는 적어도 그 참여자들에게는 투자수익률(ROI)이 아주 높은 게임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적발만 안 되면 지위 고하나 재산 다과를 막론하고 함께 번창할 수 있는 사업이다. 심지어는 적발시 대책까지 세워 리스크를 관리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런 수익구조가 상존하는 한, 병무비리가 근절되지 않으리라는 데 있다. “꼭 가고 싶습니다”는 식의 캠페인만으론 근본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이다.

반독재투쟁을 하다 징집돼 군대에 가면 운동권으로 찍혀 고초를 겪는 걸 보면서도, 그래도 군대는 가겠다고 고집했던 청년들이 많았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며 논산 눈물고개를 무릎, 팔꿈치가 닳아 터지도록 기어오르던 젊음의 기개가 오늘 우리가 존재하는 토양일 것이다. 이제 각박해진 세상에 길들여진 또 다른 젊은이들이 영악스럽게 주판을 튕기고 ‘열외의 특혜’를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병무비리의 정치경제학이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수법은 날로 교묘해지지만 그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비리의 수익모델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방법은 그 투자수익률을 낮춰 차라리 군대 갔다 오는 게 낫다고 느끼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군복무 중에도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하거나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을 우대하는 방안도 있겠지만 한계가 있다.

결국 관건은 적발률을 높이는 데에 있다. 병무비리는 그 참여자들이 원하는 기대수익과 적발률의 함수인데,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기대수익은 큰 반면 교묘하게 병역면제를 받아내는 브로커들의 기술 수준과 병무청 주변 비리커넥션의 내응(內應) 등으로 적발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으로 낮게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기대수익이 아무리 크더라도 적발률을 높여 사업의 리스크를 극히 위험한 수준까지 끌어 올리면 비리발생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문제 해결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분명해진다.

▼적발률 높여 ‘꼼수’ 안 통하게▼

병무청은 이번 수사가 진행되자 사구체신염 등을 중점 관리대상 질병으로 지정하고 도핑테스트를 질병검사에 도입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이것은 상류층과 명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번에 문제된 특정 질환군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거진 브로커와 병무청 내부 인사간 ‘인적 유착’을 근절할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질환별, 사유별, 대상자별 병역면제판정의 추이나 빈도, 유관기관들의 역할 관계, 징병검사 관계자들의 재산변동 등을 포함한 병무비리의 사전경보나 추적, 점검을 위한 정보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운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징병검사의 판정기준 등 관련제도의 허점을 면밀히 점검하는 일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