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 9단은 ‘바둑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프로 기사들은 50대에 이르면 바둑이 부드러워지지만, 조 9단은 더 강력한 전사의 기질을 드러낸다. 승부욕도 줄지 않아 대국 도중 다리를 떨며 ‘다 죽었나’ ‘못 당하겠군’ 등 엄살을 피우며 전력을 다한다.
조 9단은 ‘요즘 젊은 기사들에겐 못 당한다’고 하면서도 그들과 만나면 강수를 연발해 골머리를 앓게 만든다. ‘전신(戰神)’ ‘제비’ 외에 ‘훈련 조교’라는 또 다른 별명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흑 41도 조 9단만이 구사할 수 있는 수. 사방이 백이어서 몸을 사려야할 장면인데도 거꾸로 공격을 하겠다고 나서니 상대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전보에서 말한 대로 조 9단은 상대가 달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조 9단은 상대의 실수만 기다리거나 무리하게 도발하지 않는다. 조 9단의 수법에 대응하기 위해선 침착하고 정확한 공격이 필요하다.
양건 7단이 반격의 일보로 내디딘 백 44가 실착이었다.
백 44 이전에 참고도 백 1로 먼저 끊어두는 게 수순이다. 참고도 백 9까지 실전과 비교하면 백이 시원스럽게 중앙으로 뛰어나가며 좌변 흑을 공격하는 자세를 취하게 된다. 참고도 백 1은 먼저 손해를 보는 수여서 양건 7단이 고려하지 않았던 것.
그러나 실전에서 백은 44로 단순하게 끊었기 때문에 백 52로 후수를 잡아 흑 53의 선공을 당하게 됐다. 흑은 57로 일방적인 공세를 취하며 신바람을 내고 있다.
상변에서 실리를 챙긴 흑은 당분간 백의 공격에 시달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이 조금이라도 정확하지 않으면 그 틈을 헤집고 들어가는 것이 조 9단의 바둑이다. 신예들은 이 같은 조 9단의 되치기를 두려워한다.
백 58은 평범한 응수타진 같지만 상변 전투를 대비한 축머리. 백이 대마의 안위만을 도모해 수비에 치중하다간 내내 끌려다니기 십상이다. 양 7단은 백 60으로 기를 모아 반격하고 나섰다. 해설=김승준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