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핵 물질 실험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사안별로 찔끔찔끔 뒷북해명에 나서고 있어 ‘핵(核)외교’가 실종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4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13일 한국의 핵 물질 실험에 ‘심각한 우려(Serious Concern)’를 표시하자 “그런 표현은 통상 핵물질 신고위반에 사용하는 상투적인 문구”라고 의미를 깎아내렸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빈의 IAEA 주변에서는 “엘바라데이 총장이 그런 표현을 썼다면 한국 핵문제가 안보리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안보리 회부가능성을 일축해온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도 상황이 심상치 않자 14일 “사안종결을 위해 안보리 보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핵 재처리 시설 포기로 핵무기 개발 능력이 거의 없는 한국의 핵문제가 자칫 안보리까지 갈지 모르는 상황이 된 데 대해 전문가들은 핵외교를 총괄하는 사령탑 부재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핵물질 의혹이 불거진 이후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걷어내기 위해 문제된 실험을 한 과학자들을 법적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과학기술부는 “문제없는 실험”이라고 서로 엇갈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핵문제가 불거진 초기 단계부터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대응을 해야 했음에도 외신에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관련 부처가 제각각 대응하다가 결국 의혹만을 키워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의 이정훈(李政勳) 교수는 “NSC가 많은 권한을 부여받았는데도 이번 핵문제와 관련해 걸맞은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며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원폭 투하를 당한 일본이 패전 직후인 1954년 ‘원자력의 평화 이용 예산’을 반영해 50년 동안 꾸준히 종합적이고 일관된 핵정책을 펼쳐 오늘날 핵 강국으로 성장한 점을 선례로 삼아 국제사회의 의혹을 해소하면서 핵능력을 갖추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태원기자 taewona_ha@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