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의 땟물이 덜 빠져 있던 유학시절, 충격으로 다가온 일이 하나 있었다. 박정희 시대 평가에 있어서의 격심한 ‘내외 온도차’였다. 한국사회의 야박한 평가와는 달리 국제사회는 그 시대를 ‘동아시아 기적’의 대표적 사례로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고민은 그래서 시작되었다. 박정희 시대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역사였다면 그 대안은 무엇이었겠는가. 장면 정권이 지속됐다면 민족의 숙원인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했을까.
▼‘박정희시대’ 부정만 하는 정권▼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독립국에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가지 과제가 존재했다. 이를 수행해 나가는 방식에서 각 나라는 선택을 달리했다. 한국처럼 선(先) 산업화-후(後) 민주화 노선을 선택한 나라가 있었던 반면 선 민주화-후 산업화 노선 또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병행 발전을 택한 나라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노선을 선택했는가에 따라 명암이 엇갈렸다. 하버드대의 경제학 교수 로버트 배로는 1994년에 발표한 ‘민주주의는 성장을 위한 처방인가’라는 논문에서 오직 선 경제 발전-후 민주주의 노선을 선택한 나라들(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만이 성공했음을 100여개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실증조사에 기초해 입증했다. 그가 발견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1인당 국민소득이나 평균수명 또는 교육 등에서 큰 성취를 이룩한 국가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민주화돼 간다는 사실과 생활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민주화된 나라들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자유를 잃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이를 기초로 배로 교수는 산업화 초기의 민주주의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결론지었다.
흥미로운 것은 배로 교수의 이러한 논리가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다. 경제발전을 통해 중산층이 두꺼워지고 도시화가 진전되어야 경제적 자유에 대한 욕구가 상승해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다. 요컨대 권위주의 경제발전은 자신의 무덤을 팔 세력을 양산해 낸다. 이렇게 봤을 때 체제의 안정성과 정책의 신뢰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권위주의 체제는 ‘한시적인 필요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박정희 시대는 ‘민주화의 암흑기’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사회경제적 기반 조성기’였다 할 것이다(정희채·‘정치발전론’·법문사).
이런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김대중’ 없는 ‘박정희’는 가능했어도 ‘박정희’ 없는 ‘김대중’은 불가능했다. 요컨대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 노선은 박정희의 선 산업화 노선이 없었으면 성립 불가능한 테제였다.
권위주의 통치 기간에 일어난 인권유린마저 정당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완벽한 역사가 있을 수 없음을 감안할 때 박정희 시대는 우리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었으며 과(過)에 비해 공(功)이 훨씬 큰 시대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현 정권의 인식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세계 제12위의 경제대국이 됐으니 미국과의 관계도 수평적으로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어떻게 해서 경제발전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대통령의 경제브레인 이정우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박정희의 개발독재는 인간이 갈구하는 최소한의 자유조차 주지 않았으므로 양적 성장이었긴 하지만 결코 경제발전이 아니었다”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은 결코 개발독재에 의해 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우리는 이 암울한 시기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개발독재와 박정희 시대’·창비).
▼‘완벽한 역사’ 있을수야▼
나는 북한정권 말고 건국-산업화-민주화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현 정권만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라와 정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현 집권세력은 자학사관의 소유자들이다. 이제 전선의 성격은 명확해졌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증오하는 사람들의 일대 회전, 이 나라의 운명은 그 결과에 달려 있다.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