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앞니 두개’가 진저리나는 ‘저주의 악령’을 쫓아낼 수 있을까.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팬들은 ‘저주(curse)’라는 단어에 몸서리를 친다. ‘밤비노의 저주’ 때문이다. 1918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보스턴은 1920년 강타자 베이브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헐값에 팔아넘긴 뒤 단 한차례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이게 밤비노(루스의 애칭)의 저주라는 얘기다.
이런 마당에 보스턴 팬들에게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그 저주가 마침내 풀릴지도 모를 희한한 사건이 벌어진 것.
주인공은 리 개빈(16)이라는 고교 2학년 학생. 그는 1일 보스턴의 홈구장 팬웨이파크 오른쪽 외야 관중석에서 자신의 우상인 보스턴의 강타자 매니 라미네스의 파울 타구를 잡으려다 앞니 두 개가 부러졌다.
‘밤비노의 저주’의 주인공인 베이브 루스. 밤비노는 루스의 애칭이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문제는 소년의 집 주소가 ‘서드베리 더튼로드 558’이라는 점. 바로 루스가 1916년부터 11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루스의 영혼이 서린 곳에 살고 있는 개빈의 이를 부러뜨렸으니 저주의 장본인인 밤비노의 이를 부러뜨린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일까.
마침 그날 보스턴은 애너하임 에인절스에 10-7로 승리했고 이후 10연승을 질주했다. 반면 같은 날 뉴욕 양키스는 루스의 흉상이 있는 ‘안방’ 양키스타디움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0-22로 패하며 101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스코어로 무너졌다.
개빈은 “많은 사람들이 농담처럼 나와 우리 가족이 저주의 원인이었다고 말했다”면서 “그래도 내 이가 부러져 저주가 풀린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앓던 이 빠지듯 과연 저주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올해 만약 보스턴이 86년 만에 다시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다면 그 일등공신은 바로 ‘부러진 앞니 두 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