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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터뷰]‘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돌아온 최민식

입력 | 2004-09-15 18:07:00

최민식이 흘러간 유행가 가사같은 제목의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올드 보이’의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이전 작품들과 달리 사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얼굴이다. -김동주기자


그에게 다가서면 ‘징하다’는 남도 사투리가 떠오른다. 뜨겁고 강하지만 때론 아프고 슬픈…. ‘쉬리’의 냉철한 전사부터 ‘해피 엔드’의 유약한 남편 민기, ‘파이란’의 슬픈 양아치 강재, ‘취화선’에서의 섬뜩한 예술혼의 장승업, 지난해 ‘올드 보이’ 오대수의 광기까지.

‘올드 보이’ 이후 근 1년 만에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23일 개봉)으로 돌아온 배우 최민식(42)을 1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꽃피는 봄이 오면’

이 작품은 사랑도 일도 제대로 풀지 못하던 30대 중반의 트럼펫 연주자 현우(최민식)가 임시교사로 강원 산골의 한 중학교 관악부를 가르쳤던 그 겨울, 한 철의 사연을 담았다.

최민식은 지난해 12월경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처음 만났다. 류장하 감독이 그에게 현우를 꺼냈다.

“부드러움으로 따지면 ‘용사마’(배용준)도 있고 다른 배우도 많은데….”(최민식)

“형은 세지만 부드러움도 있고 된장국 같은 편안함도 있어요.”(감독)

‘그놈’의 된장국 소리에 넘어갔다. 3월부터 ‘올드 보이’로 칸영화제 참석을 위해 10일쯤 촬영장을 비운 것을 빼면 4개월여 강원 삼척시 도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오대수 vs 현우

왜 하필 이 작품이었을까.

“‘착한’ 영화예요. 잊었던 어머니, 친구, 마을 앞 나무, 작은 마을버스, 구멍가게 앞에서 장기 두는 아저씨들…. 현우를 통해 관객에게 소소한 행복을 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올드 보이’의 오대수로 극한까지 치달았던 무거움과 비장함을 몸에서 훌훌 털어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을 통해 ‘날카로운 각’을 부드럽게 하고, 힘을 빼고, 거칠어진 면을 고운 사포로 다듬고 싶었습니다. 연인과 사귀다 실패하면 다른 여자와 사귀는 게 최고의 약이듯이, 배우는 분위기가 다른 작품과 연애해야죠.”(웃음)

●장도리와 군만두 vs 트럼펫과 라면

장도리와 군만두. ‘올드 보이’ 오대수의 것이다. 현우의 상징은 트럼펫과 라면이다.

현우가 자취방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재일(이재응)과 라면을 함께 먹는 신은 보는 사람이 군침을 삼킬 만큼 인상적이다.

“제가 라면 CF에도 출연한 적이 있잖아요. ‘소품용 라면’을 먹었는데 3번 촬영 만에 끝냈어요. 봤죠? 김치도 없었어요.”(웃음)

시사회 뒤 기자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곧장 라면을 먹으러 갔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도리 집어던지고 대신 트럼펫을 손에 쥐니까 사람이 달라져요. 갇혀서 군만두 먹는 것하고 라면이라도 제자랑 오순도순 먹는 맛은 정말 다르죠.”

●융단폭격

‘꽃피는…’은 오랜만에 최민식의 유머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카리스마가 걷힌 그의 유머는 의외의 웃음을 자아낸다. 극중 현우가 횟집에서 친구 경수(장현성)와 나누는 대화 한 토막.

“유부남이 무슨 연애 타령이냐. 애가 없어서 그래.…‘프레시하게’ 새로 시작해. 밤마다 융단폭격을 디립다 해.”(현우)

“장가도 안 간 ‘새끼’가 아는 건 많아서 좋겠다.”(경수)

“내가 인마 폭격을 어디다 하냐? 할 데가 있냐? 내가….”(현우)

시나리오에는 없었지만 현장에서 만들어진 대사였다. 기자의 짓궂은 질문이 이어졌다.

“결혼한 지 꽤 됐는데 융단폭격은 안 하셨나요.”(기자)

“귀양살이 하느라 시간이 있어야지. 허허.”(최민식)

●내 인생의 여름

배우 이전의 한 인간으로서 그는 ‘인생 미터기’가 40을 꺾으며 느낌이 풍부하고 다양해졌다고 했다. 배우 최민식의 연기인생은 지금 어느 계절에 있을까.

“‘꽃피는…’의 현우가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았다면 제 연기인생은 이제 여름인 것 같아요. 나이나 경력을 감안해도 그렇고…. 지금이 관객과 가장 열정적으로 만나는 시기예요.”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