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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아크로폴리스]동북아시아와 한국

입력 | 2004-09-15 19:06:00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왼쪽에서 두번째)는 “동북아시아는 이미 있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어떻게 이름 붙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지 고민해야할 우리의 숙제”라고 말한다. 왼쪽부터 송미정씨, 이 교수, 여현정양, 황승호군. -박영대기자


《모든 방은 육면체로 비슷하지만 회의실, 안방, 교실처럼 붙여진 이름은 다르다. 교실을 안방 삼아 누워 잘 수 없는 것처럼 그 공간이 어떻게 규정되는가에 따라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은 달라진다. 동북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이 공간을 어떻게 ‘이름’ 붙이고 한정짓고 의미 부여하는가에 따라 그 역내(域內) 국가들의 행동양식도 규정을 받는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이근 교수(41)가 송미정씨(21·중앙대 정외과 3년), 여현정양(17·둔촌고 2년), 황승호군(17·둔촌고 2년)과 함께 동북아시아를 어떻게 규정해야하며 그 안에서 한국이 갈 길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

●동북아시아는 ‘없다’

▽이근 교수=동북아시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여현정=한국 중국 일본입니다.


▽이 교수=아시아 동북쪽에는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있지만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러시아는 보통 빼지요. 그런데 중국은 아시아 동북쪽은 물론 동남·서남·중앙아시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자신의 활동 범위가 아시아 동북쪽에 제한되기를 원하지 않을 겁니다. 이처럼 동북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간단히 규정할 수가 없어요.

▽송미정=지리상으로는 멀지만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요.

▽이 교수=북핵문제나 6자회담 등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을 빼고 동북아시아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지역은 이슈, 지리적 영역, 경제적 상호관계 등을 통해 하나의 단위로 생각할 수 있어요. 유럽연합(EU)은 가입 국가간의 무역량이 원래 많으니까 유럽만으로도 지역을 국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중일을 보면 삼국간의 무역량만큼이나 미국과 각 국가간의 무역량도 많습니다. 한중일을 동일한 문화권으로 묶기도 어려워요. 한자를 쓰기는 하지만 그걸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관계는 아니지요. 결과적으로 동북아시아는 없습니다. 하지만 유럽, 남미, 호주가 동북아시아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죠. 결국 동북아시아는 ‘무(無)에서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무엇’이지요.

●동북아시아 만들기

▽황승호=더 넓은 세계가 있는데 동북아시아를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있나요.

∇이 교수=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우리는 의지할 곳이 없었지만 유럽은 비슷한 위기를 겪으면서 결국 단일통화를 만들어 공동운명체가 됐어요. 동북아시아도 그런 단위가 돼야 합니다. 또 사회에서 개인이 실직했을 때 실업수당이나 재교육을 시켜주는 사회안전망이 있듯이, 한국 자체가 ‘해고’ 됐을 때를 대비한 ‘국가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어요. 그 국가안전망을 동북아시아로 삼아 세계화 물결에 흔들릴 때마다 서로 도와주는 공간을 만들자는 겁니다. 그 다음은 경제적 경쟁력을 위해서입니다. 정보기술(IT), 나노 테크놀로지 등 미래의 고부가가치산업은 ‘규모의 경제’라야만 경쟁력을 가집니다. 그런데 한국 시장만으로는 좁습니다. 동북아시아가 그런 ‘규모의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안보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국가간 관계가 안전해야 제대로 경쟁력을 갖고 경제, 문화 활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안전한 동북아시아가 필요하지요.

▽여=그런데 실제로는 ‘동북아시아는 하나’라는 유대감을 느끼기가 어려운데요.

∇황=한중일 삼국간의 역사적 문제가 감정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 같고요.

∇송=남북한이나 중국, 대만 모두 분단국가인 것도 문제예요.

∇이 교수=유럽과 동북아시아가 다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국가 문제입니다. 유럽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래 통일된 근대국가체제가 지속되면서 주권과 영토에 대한 상호인식을 학습했지요. 그러나 동북아시아에서 근대국가란 19세기 말에야 나타난 개념이고 그나마 주권국가들이 쪼개져 있어 하나의 주권국가로서 서로를 인정하는 인식이 부족하지요.

●동북아시아 스탠더드

∇송=동북아시아라는 공간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이 교수=한국의 국가안전망이 될 수 있고 경제적 편안함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 스탠더드를 만들어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중국과 일본이 남북에 대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한중일 삼국의 협력관계 조성이 어려울 것 같아요. 북한 개방을 위해 계속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수=북한이 핵(核)을 갖고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위를 해도 계속 두드려야 할까요.

∇송=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것은 북한 체제만 연장시키고 인권은 악화시킬 뿐이라고 보는데요.

▽이 교수=인권, 민주주의, 평등, 투명성 같은 스탠더드의 특징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겁니다. 인권 역시 동아시아의 스탠더드가 될 텐데, 한국 정부나 일부 시민단체는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남북문제 진전에 더 좋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황=제 생각엔 인권문제는 배제하고 경제적 협력이나, 불가침조약을 공고히 하는 것이 한국의 국가안전망 구축에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이 교수=그럼 미국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황=미국은 안보적, 경제적으로 우리가 계속 의지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여=저는 미국으로부터의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 동북아시아만의 특성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이 교수=미국으로부터 자립하고 한중일 경쟁에서 살아남으면서 한국이 동북아시아라는 공간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비전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최근 한국 정부는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향하는 이벤트만 중시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입니다.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로 미래 전략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공부를 해주길 바랍니다.

동북아시아와 한국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

▼ 동북아시아와 한국 이해를 돕는 책

▽‘동북아 경제협력:통합의 첫걸음’ (박영사·2003)=세계화 시대에 동북아시아와 한국이 헤쳐 나가야 할 다양한 위험요인들을 분석하면서 하나의 해결방법으로 동북아시아 통합을 이야기 한다. 유럽연합(EU),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아세안자유무역협정(AFTA) 등 현존하는 지역 경제통합의 사례들도 설명했다. 안충영 이창재 엮음.

▽‘동아시아:위기의 정치경제’ (서울대 출판부·1999)=1997년 동아시아에 닥친 외환 금융위기를 맞아 한국 경제위기의 복잡한 원인들을 국제정치경제적인 시각에서 규명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동아시아 각국이 겪었던 경제 위기와 사후 조치들을 자세히 분석했다. 백광일 윤영관 엮음.

▽‘세계화와 한국의 개혁과제’ (한울 아카데미·2003)=국가이익, 금융, 기업, 산업통상, 노동, 정치개혁 그리고 정부부문 등의 영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 혹은 세계화의 본질을 규명했다. 또 한국이 이러한 도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문제점을 분석하여 이를 토대로 개혁과제와 미래전략을 제시한다. 윤영관 이근 엮음.

정리=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