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나이트 샤말란 감독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 사람은 계속 공포영화만 찍고 있을까? 장르 영화로서의 관습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아닐지라도 데뷔작 ‘식스 센스’에서부터 ‘언브레이커블’, ‘사인’ 그리고 이번 영화 ‘빌리지’까지 그는 늘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자기 영화의 주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처럼 세상이 공포스러울 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진실을 알리는 데 때로 공포영화만 한 것이 없다.
‘빌리지’는 장르를 굳이 분류하자면 ‘미스터리 공포영화’다. 공포영화라고 해도 일단 ‘샤말란 표’라는 딱지가 붙으면 한참 다른 공포물이 되기 때문이다. ‘빌리지’가 그렇다.
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코리아
이번 작품은 어떤 면에서는 공포영화라기보다 비극적인 삼각 로맨스처럼 보이기도 하고 역설적인 의미의 가족 드라마로 보이기도 한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한 작고 평화로운 마을. 이 마을에는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가족처럼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근심이 있다. 마을 밖 숲에 이들을 바깥 세계와 차단시키는 괴물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 평화로운 마을에 괴물이 침입하기 시작하고 마을은 일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그 와중에도 두 청춘 남녀는 사랑에 빠지고, 여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가 여자의 연인을 칼로 찔러 중태에 빠뜨린다. 여자는 약을 구하기 위해 숲을 가로질러 마을 밖으로 나갈 것을 결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마을을 둘러싼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빌리지’는 처음부터 현재의 미국인들이 처한 상황을 빗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숲 속 괴물은 미국인들이 스스로 강제한 심리적 적과 같은 존재일 것이고, 미국인들은 영화 속 마을 사람들처럼 바깥의 위협에 전전긍긍한 채 오직 안전만을 생각하며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으나 (괴물의) 실체를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며, 원로들은 마을을 걱정한다며 늘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지만 한번도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지금의 미국사람들이 어쩌면 딱 그런 형국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결국 마을의 위기를 구하게 되는 두 젊은 연인이 한 사람은 거의 말을 않고 살아가는 과묵한 청년이고, 또 한 사람은 앞을 못 보는 맹인 여성이라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눈에 보이는 것,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이 모두 다 진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샤말란은 아마도 바깥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지금 미국의 현실을 보면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귀신이나 괴물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 나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곡된 사실에 의해 오도되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더 이상한 존재로 변해 가는 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그의 영화가 늘 그렇듯 이번 영화 역시 결말에 가까이 갈수록 엄청난 반전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반전의 최고봉은 역시 ‘식스 센스’였다. 작품을 만들면 만들수록 그의 반전은 다소 약효가 떨어지는 감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영화의 반전은 가장 인간적이다. 우리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다. 반전이 좀 약하다고 해서 그게 뭐 대수인가. 보고 나서 남는 것이 있는 영화가 그래도 좋은 법이다. 지금이 어떤 때인가. 가족과 세상의 평화를 걱정해야 할 추석 시즌인 것이다. 2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