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킹엄궁의 ‘배트맨 침입사건’에 이어 15일 국회의사당에 시위대가 난입해 난장판을 벌인 영국에서 주요 시설의 보안 문제가 사회적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영국 언론과 야당 의원들은 테러에 무방비 상태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여론도 정치인과 왕실 인사 경호에 대한 허술한 대처를 비난하고 있다.》
▽의사당에 시위대 난입=여우사냥 금지법안을 심의하던 영국 하원에 15일 시위대가 난입했다. 이날 의사당 앞 광장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함성을 지르며 시위를 벌이던 1만여명의 사냥 지지자들이 경찰과 충돌하는 사이에 5명의 시위대원이 경비원의 눈을 피해 하원 회의장으로 잠입한 것.
아무런 제지 없이 회의장까지 들어온 이들은 여우사냥 금지법안을 제출한 정부 각료들에게 야유와 욕설을 퍼붓다 경비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이들을 포함해 의사당 진입을 시도한 8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번 소동으로 하원의 여우사냥 금지법안 논의가 20분 정도 중단됐으나 법안은 하원 심의를 통과했다.
의사당 정문 앞에서 시위대와 충돌한 경찰은 시위대를 물러나게 하기 위해 경찰봉을 휘둘렀으며 이 과정에서 17명이 다쳤다. 흥분한 일부 시위대는 병과 돌을 던지며 저항했으며 시위는 4시간가량 이어졌다.
▽심각한 ‘보안 불감증’=BBC방송은 의사당 난입이 17세기 찰스 1세가 의사당에 들어가 의원을 체포하려던 사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했다. BBC방송은 “시위대가 마음만 먹었다면 의원들을 해치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힐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영국 언론들은 특히 최근 요인에 대한 보안의 허점이 잇따라 발생한 데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로이터통신은 13일 벌어진 ‘배트맨 사건’, 5월 의회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보라색 분말이 뿌려진 사건 등과 함께 ‘영국에 대한 테러 공격이 있을지 모른다’는 영국 경찰의 경고를 상기시키면서 보안 불감증을 질타했다.
로이터통신은 “의사당 경비가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허술하다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며 “보안에 대해 영국이 가진 자부심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더 타임스 역시 “의원석과 방청석 사이에 방탄유리를 설치했는데도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경비에 대한 전면 재점검을 요구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야당인 보수당도 “끔찍한 문제”라며 사건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요구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최근 영국에서 벌어진 왕궁 및 의회 침입 사건
―2003년 8월:오사마 빈 라덴 복장을 한 코미디언이 윈저성에 침입해 윌리엄 왕자의 생일 파티에 등장
―2003년 11월: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버킹엄궁 방문을 앞두고 데일리 미러 기자가 위조신분증으로 버킹엄궁에 하인으로 위장 취업
―2004년 2월:부권단체 운동원이 하원 방청석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보라색 분말이 든 콘돔 투척
―2004년 9월:배트맨 복장을 한 시위자가 경비를 뚫고 버킹엄궁 발코니에 올라가 시위
―2004년 9월:여우사냥금지법 반대 시위대가 하원에 난입
:여우사냥:
개를 데리고 하는 여우사냥은 300년간 주로 귀족들 사이에서 성행된 영국의 전통 스포츠. 집권 노동당은 여우사냥이 전근대적이고 잔인한 스포츠라는 이유로 금지를 추진하고 있으나 보수적 성향이 강한 상원과 농촌 주민들은 금지를 반대하고 있다. 농촌 주민들은 여우사냥이 가축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일자리까지 창출한다며 여우사냥이 금지될 경우 농촌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당 정부는 2002년 여우사냥 금지법을 상정해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의 거부로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노동당은 이에 따라 여우사냥 금지를 2년간 유예한 뒤 2006년 7월부터 전면 금지한다는 수정안을 제출해 하원 심의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