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李憲宰) 부총리가 16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힘에 따라 리디노미네이션이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경부는 “외국 사례에 대한 기초연구에 들어갔다는 뜻”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일부 부유층은 “화폐개혁이 아니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화폐개혁인가, 화폐제도 개선인가=하나은행 김성엽 분당백궁역 지점장은 “일부 부자 고객의 경우 1950, 60년대에 실시한 ‘화폐개혁’을 떠올리면서 리디노미네이션 공론화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며 “예금을 부동산이나 금으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1953년과 1962년 실시된 화폐개혁 때는 각각 화폐단위를 낮추면서 긴급조치(대통령령)를 발동해 통화 및 예금을 일시적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봉쇄조치를 병행했다.
한국은행 김두경 발권국장은 “최근 논의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개혁이 아니고 계산상 편의를 위한 화폐단위 변경”이라며 “신권과 구권의 원활한 교체를 위해 최소 1년 동안 신·구권이 동시에 통용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정말 필요한가=A은행 K모 차장은 올해 7월 터키 이스탄불 출장 때 말로만 듣던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이스탄불 국제공항 환전소에서 바꾼 100달러는 터키 돈으로 무려 1억4000만리라. 또 펩시콜라 1병이 85만리라(약 680원), 지하철표 1장이 100만리라(약 800원)였다. 터키는 내년 1월부터 ‘여섯 자리의 0’(100만리라를 1리라 변경)을 떼어내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실시한다.
한은은 계산, 기록, 지급, 대외 거래의 편의를 위해 리디노미네이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또 경제력에 걸맞게 국내 통화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는 것.
김 국장은 “5, 6년 후에는 조(兆)의 1만배인 경(京)이 각종 경제수치에 등장하게 될 것”이라며 “이렇게 복잡한 단위를 쓰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화폐 가치가 낮은 나라들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환율이 1유로당 1400원인 한국이 조만간 ‘국제적으로 기이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물가 불안이 가장 큰 부담이다. 예를 들어 1000 대 1로 화폐단위를 절하할 경우 현재 900원짜리 물건 가격은 0.9원이 되는데 편의상 1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부총리도 “물가수준을 어떻게 완화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화폐 발행 비용이 많이 들고 물가불안 심리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상승 우려에 대해 한은은 2002년 유럽연합(EU)이 유로화를 도입할 때 화폐 변경에 따른 물가상승 효과가 0.2%에 그친 점을 들어 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준비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을 할 경우 시행하는 데까지 적어도 3∼5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화폐 용지와 도안, 동판 조각, 위폐 방지 기능 시험 등을 거쳐 새 화폐를 발행하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
리디노미네이션은 정부가 승인하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 실시할 수 있다. 한은법 49조는 ‘정부의 승인을 얻어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하는 바에 의해 규격 모양 권종의 한국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