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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조선 "김희선 의원이 전봉애 여사 회유"

입력 | 2004-09-17 17:06:00


월간조선(대표 조갑제)은 17일 오전 있던 김희선 의원측의 기자회견과 관련, 이날 오후 공식 반론을 발표했다.

월간조선측은 '김학규 장군이 1910년 13살이었다'는 김의원측 주장에 대해 "이날 김희선 의원이 배포한 '김학규 장군의 호적'에서 확인된다"며 "호적에 김학규 장군의 생일은 '1900년 11월24일'로 기록돼 있고, 본관은 '安東(안동)'으로 기록돼 있다"고 반박했다.

월간조선은 또 김 장군의 큰 며느리인 전봉애 여사의 증언 번복에 대해 "김희선 의원측이 우리가 전여사를 취재하는 것을 감지하고, 전여사 가족들을 불러 저녁을 사는 등 회유작업을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측은 또 "전봉애 여사가 '(김희선 의원이) 이 사실이 알려지면 친일청산 작업에 지장이 온다며 도와달라고 호소했다'고 기자에게 밝혔다"고 설명했다.

월간조선은 김 의원 부친 김일련의 '만주국 경찰' 보도에 대해선 "김 의원측이 부친의 독립운동가 경력을 입증하기 위해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모셔온 분들은 모두 '해방 이후'의 행적을 얘기했다"며 "일제 말기에 김일련이 만주에서 어느 독립군 부대에서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는지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월간조선측 반론 전문이다.

1)「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성범과 김학규 장군은 친형제」라는 김의원측의 주장에 대해.

김희선 의원은 「의성 김씨 족보에 김순옥의 사망 시기가 1897년이고 김학규의 출생이 호적상 1900년으로 기재되어 있는 부분은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하나 그 당시 족보든 호적이든 정확한 것이 있겠는가」라고 주장했다. 김의원은 김성범(김희선 의원의 할아버지)의 2녀 김일신의 회고록에 1910년 가족들이 만주로 이동할 당시 김학규가 13살이었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김학규 장군이 「1897년생이나, 1900년생이냐」는 「김성범과 김학규가 친형제」인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김학규 장군이 1900년생인 것이 확정되면, 「친형제 주장」은 설 땅이 없다. 김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배포한 자료와 설명에서, 김학규 장군이 1897년생임을 입증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부정확한 기억, 근거가 확실치 않은 개인들의 메모를 들고 나왔다.

김학규 장군이 1900년생임은 이날 김희선 의원이 배포한 「김학규 장군의 호적」에서 확인된다. 호적에 김학규 장군의 생일은 「1900년 11월24일」로 기록돼 있다. 본관은 「安東(안동)으로 기록돼 있다.

김학규 장군은 자신의 「백파 자서전」에서 「나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1900년 11월24일 한국 서북부 해안 일평원지대인 어떻나 농촌에서 출생하였다」고 밝혔다. 김학규 장군 본인보다 자신의 생년월일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김학규 장군의 「백파 자서전」은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김학규 장군이 1900년에 태어났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2) 田鳳愛 여사의 진술 번복에 대해.

月刊朝鮮은 이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전봉애 여사를 다섯차례에 걸쳐서 만났다. 한번 만날 때마다 1시간30분에서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다. 이 대화 내용은 전부 녹취됐다. 김희선 의원측은 月刊朝鮮이 전여사를 취재하는 것을 감지하고, 전여사 가족들을 불러서 저녁을 사는 등 회유작업을 계속했다.

전봉애 여사는 『(김희선 의원이) 이 사실이 알려지면 친일청산 작업에 지장이 온다. 도와달라고 호소했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보도가 나간 후 전여사에게 엄청난 압박이 몰려오고, 진술을 번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월간조선은 취재의 전 과정을 녹음할 수밖에 없었다.

전여사는 기자회견장에서 『친척들이 전부 다 안동김씨가 아니고 의성김씨이니 그리 알라고 해서 우리가 잘못 알았구나, 아 우리가 잘못됐다. 그래서 집에 와서 기자에게 안동김씨가 아니라 의성김씨랍니다. 그랬고?』라고 밝혔다. 그 행간에서 김희선 의원의 집요한 압박을 느낄 수 있다.

김학규 장군은 1900년생임이 그의 회고록과 호적에서 확인됐다. 김학규 의원이 「안동김씨」임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김희선 의원측은 「수십년 동안 교류가 끊겼던 사람의 불확실한 기억을 가지고?」라는 표현으로, 전봉애 여사가 수십년동안 교류가 끊어져 집안 사정에 밝지 않은 사람으로 몰아부치고 있다.

전여사는 월간조선 10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내가 큰 딸을 평남 평원군 사산리에 있는 큰 시아주버님(김학규 장군의 형) 집에서 낳았는데 얼마나 잘 대해주시던지. 1947년에 월남할 때 슬피우시던 기억이 납니다. 집안의 우애가 대단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김학규 장군은 김희선 의원이 혈연적으로는 친손녀가 아니지만, 친손녀처럼 가깝게 대하셨던 거에요』

전 여사는 큰 시아주버니(김학규 장군의 형)이 「안동 김씨」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시아주버니 김성범은 「의성 김씨」이고, 김학규 장군은 시할머니 선우순(鮮于順)이 「안동 김씨」 집안에 시집와서 낳았기 때문에 「안동 김씨」라고 분명히 기억했고, 증언했다. 전여사가 지난 60여년간 알아온 이 분명한 사실이 요 며칠 사이에 무슨 이유로 뒤바뀌었는지는, 김희선 의원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남편의 본관을 모르는 아내가 있는가?

3)김희선의원의 부친 김일련이 만주국 경찰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라는 주장에 대해

김희선 의원이 부친의 독립운동가 경력을 입증하기 위해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모셔온 분들은 모두 「해방 이후」의 행적을 얘기했다. 일제 말기에 김일련이 만주에서 어느 독립군 부대에서 어느 지역에서 활동했는지에 대한 「알리바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독립운동가 김은석 옹은 『해방 후 봉천에서 김일련을 만났다. 백파 선생의 비서실장인 이시찬동지가 「한국에서 들어오신 백파선생의 조카이신 같은 당 동지니까, 기탄없이 손을 잡고 일하시오」라고 소개했다』고 증언했다.

10여명에 가까운 증인들이 나왔지만, 「김일련이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얘기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희선 의원은 「한독당 비밀당원으로서 김구 선생의 밀명을 받아서, 중국에 파견됐던 아버지가 러시아에 붙잡혀 갔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1954년 아버지가 러시아의 수용소에서 보냈다는 편지 한 통을 근거로 대고 있다.

김의원은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행적을 입증하고,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그 결정적 자료를 이번 기자회견에서 공개하지 않았다. 러시아 당국은 왜 김일련을 정치범으로 구속했을까? 김일련이 러시아 군에 정치범으로 구속된 것이 그의 일제말 행적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의혹에 대한 해명 역시 없었다.

전봉애 여사는 이번 기자회견에서 『나는 그 시아주버니가 경찰관이고 형사라고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월간조선은 「김일련이 광복 전 만주 유하에서 살면서 경찰로 일했다. 김일련은 독립운동가를 색출해서 취재했고, 그 과정에서 때리는 등 고문을 했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김일련이 만주에서 경찰을 했다는데 사실인가요」라고 물으면, 전여사는 『그랬지요』라고 대답했고,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라고 물으면, 전여사는 『동서 조인숙(김일련의 처)이 한테 들었지. 조인숙씨는 명랑한 성격에 잘 웃곤 했어요』 라고, 「남편 김일현씨는 김일련씨가 만주국 유하 경찰서에서 형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라는 물음에는 『알지요. 그건 그 주위에 흩어져 살았던 김희선 의원의 삼촌들도 다 알 겁니다』라고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해주었다.

이 부분에 관한 녹취록 역시 필요할 경우, 전문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재준 동아닷컴기자 zz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