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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硏 학술토론회 “反시장정책 양산 혼란 초래” 강도높은 비판

입력 | 2004-09-17 18:23:00

17일 한국금융연구원이 주최한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정책과제’ 학술토론회에서 이정우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이 ‘참여정부의 비전과 정책과제’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광두 서강대 교수, 김태동 금융통화위원, 박영철 고려대 교수, 이정우 위원장,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경제전문가들이 한 학술토론회에서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17일 한국금융연구원과 ‘한국경제의 분석패널’ 공동 주최로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정책과제’ 학술토론회에서 상당수 발표자 및 토론자들은 “현 정부가 반(反)시장적 경제정책을 양산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의 주요 경제브레인인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각종 우려와 비판은 근거가 없고 대안 없는 비판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반시장적 정책의 홍수”=최광(崔洸) 국회예산정책처장은 이날 “쫓겨날 각오를 하고 말하겠다”며 “참여정부는 말로는 ‘시장경제가 경제정책의 기조’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정책을 보면 반시장적 정책이 홍수를 이룬다”고 주장했다.

최 처장은 “시장경제의 두 기둥은 사유재산권과 선택의 자유”라고 강조한 뒤 “둘 중 하나라도 제한하는 정책이 바로 반시장적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노조에 치우친 노사관계 △언론시장에 대한 각종 제한정책 △출자총액제한 제도 유지 등을 현 정부의 대표적인 반시장적 정책으로 꼽았다.

이와 함께 “진보성향이 강한 17대 국회가 개혁을 빌미로 시장 억제적 입법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며 “과거 성장위주의 정책에 대한 부작용을 해결하지 못한 채 대중적 인기몰이 식의 경제정책은 혼란과 갈등만 부추길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반시장적 정책으로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시장경제를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공익을 위해 시장경제의 기본 틀을 깨는 특단의 조치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고방식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장경제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민생과 평등을 내세울수록 시장은 불평등을 확대하는 복수를 한다”며 “제발 차가운 머리로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를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카드부실 편법 처리해 신뢰 훼손”=정운찬(鄭雲燦) 서울대 총장은 신용카드 사태와 관련해 “부실한 카드회사를 퇴출시키지 않고 모두 살리려고 나서면서 금융산업에서 적자생존의 원리가 사라지고 금융감독 당국의 신뢰도 무너졌다”며 “금융정책에 있어서 가장 큰 실책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정 총장은 “참여정부가 2003년 3월 신용카드 위기가 표면화됐을 때 부실 카드사를 과감하게 정리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2001년 이후 팽창 일변도로 이뤄진 통화신용정책은 주택가격 폭등과 그에 따른 사회불안, 가계부채 급증, 물가안정 위협 등 역기능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말했다.

또 “올해 8월 콜금리 인하조치는 물가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이뤄져 앞으로 통화정책의 목표인 물가안정이 지켜질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고 밝혔다.

▽“재정 건전성 악화 우려”=나성린(羅城麟·한양대 교수) 공공재정학회장은 ‘재정정책 평가’ 주제발표를 통해 “참여정부가 재정을 단기적인 경기부양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재정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 교수는 “정치권의 요구로 추경예산을 짜거나 적자 국채를 발행해 재정의 건전성을 나쁘게 만드는 행태가 참여정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성장잠재력이 확충되지 않는 한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정책은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산수요 증가와 성장잠재력 하락, 고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세수기반 약화 등을 고려할 때 적자 재정과 국가 부채의 지속적인 증가 추세는 매우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들도 강력히 비판=토론자로 참석한 안국신(安國臣) 중앙대 교수는 “정부가 개혁의 당위성만 내세우면서 (대북정책 노사정책 등) 전방위적 개혁을 한꺼번에 밀어붙여 경제외적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며 “돈키호테식 해프닝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광두(金廣斗) 서강대 교수도 “참여정부는 1년7개월 동안 비전 타령만 하고 있다”며 “잘먹고 잘사는 것이 비전이 돼야 하는데 뭘 가지고 먹고 살 것인지가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또 김태동(金泰東) 금융통화위원은 “카드사태 처리의 경우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보다 시장원칙을 더 어겼다”며 “관치가 더 강해졌다”고 주장했다.

▽“경제위기론은 근거 없다”=이 같은 비판들에 대해 이 위원장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각종 우려와 비판은 근거가 없고 대안 없는 비판에 불과하다”며 “참여정부는 역대 정부가 감히 손대지 못했던 개혁 과제들을 하나씩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시장주의는 나라마다 제도와 관행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있다”며 “관치(官治)의 폐단을 줄여나가고 있는 참여정부를 반시장주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참여정부의 1년반은 도처에 지뢰밭이요, 가시덤불이었다”며 “참여정부는 구름에 싸인 달과 같아서 언젠가 구름이 걷히면 진가를 알아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광 국회예산처장, 나성린 한양대교수, 정운찬 서울대총장, 이정우 위원장(왼쪽부터)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