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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단위 변경 왜… 지금…” 정부 공론화 우려 확산

입력 | 2004-09-17 18:42:00

추석 경기 관련 대책회의가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해찬 국무총리(오른쪽)를 비롯해 경제 관련 각 부처 장관들과 여당 의원들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회의 중 이 총리가 이헌재 부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박주일기자


정부가 화폐단위 변경(리디노미네이션)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화폐단위 변경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6일 국회 답변에서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연구단계를 지나 구체적인 검토의 초기단계에 와 있다”고 밝힌 데 이어 17일에는 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가 이 문제를 언급했다.

박 총재는 이날 시중은행장들과의 월례 조찬 모임에서 “화폐단위 변경, 위폐방지 대책, 고액권 발행 등 3가지 화폐제도 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와 검토는 모두 끝났다”고 말했다. 방침만 정해지면 바로 실행에 옮길 준비가 돼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의 발전 정도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화폐단위 변경도 논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득실(得失)을 자세히 분석해야 하며 특히 지금처럼 내수침체와 물가불안이 심각한 경제상황에서의 성급한 공론화는 경제주체들의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화폐단위를 바꿀 때의 비용부담도 만만치 않다.

▽불가피한 물가상승 부담=정부와 한은은 지금의 화폐단위가 너무 커 경제활동에 지장을 주고 있고 국가이미지도 실추되고 있다며 화폐단위 변경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부는 화폐단위가 높은 데 따른 폐해로 △회계 작성이 힘들고 △계산이 어려워 오류 가능성이 높으며 △환율 수치가 높아 후진국으로 인식되며 △외국인에게 국내 경제상황을 설명할 때 이해시키기가 힘들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하지만 민간 경제전문가들은 화폐단위 변경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로 물가불안을 꼽는다.

예컨대 1000원을 1원으로 바꿀 경우 현재 900원짜리 물건 가격은 0.9원이 되는데 거래 편의상 1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화폐발행 비용이 많이 들고 물가불안 심리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뒤늦게 화폐단위 변경의 적극 검토로 돌아선 배경도 석연치 않다. 당초 재경부는 정치권에서 화폐단위 변경의 필요성을 제기하자 ‘우리 경제상황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고 일축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태동(金泰東)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다른 불순한 목표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화폐단위 변경에 수조원의 비용 들 듯=전문가들은 또 새로운 화폐를 찍는 비용 등 화폐단위 변경에는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선 기존 화폐를 폐기하고 새로운 화폐를 찍어야 한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화폐는 지폐가 △1만원권 20억장 △5000원권 1억5000만장 △1000원권 10억장 등 모두 31억5000만장. 여기에다 동전이 모두 143억개다. 이들을 바꾸는 데만 수천억원이 필요하다. 게다가 현금자동인출기(CD)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유통 기기 교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각종 자동판매기, 회계 및 지급결제시스템 등 새 화폐를 유통시키는 데 필요한 각종 기계와 시스템 교체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화폐단위 변경을 시행할 경우 화폐발행 비용 등을 합쳐 모두 2조원대의 비용이 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경제심리 회복이 더 시급=민간전문가들은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화폐단위 변경이라는 엄청난 조치를 취할 경우 경제주체들이 느낄 심리적 혼선과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홍기택(洪起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설사 정부가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화폐개혁을 해도 국민의 심리적 불안감이 가중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공필(崔公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요한 경제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이런 문제를 공론화할 만큼 우리가 한가한지 의문”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문제”라고 꼬집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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