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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입력 | 2004-09-17 18:49:00

그림 박순철


“그만 되었소. 내 더 묻지 않을 테니 이제부터 나라 안의 일은 승상이 모두 알아서 처결하시오.”

그렇게 소하의 입을 막은 한왕은 곧 안으로 들어가 그리로 옮겨온 가솔들을 만나 보았다.

그 사이 소하는 여치(呂雉)를 왕후로 세우고 어린 아들 영(盈)은 효혜(孝惠)태자, 딸은 노원(魯元)공주로 올려 한왕 유방이 없어도 아래위가 온전한 왕실(王室)을 짜놓고 있었다. 그들에게 예법을 가르치고 시중들 사람을 붙여 궁궐 안에서 살게 하니 풍읍(豊邑)의 농투성이 아낙이나 논두렁 밭두렁에서 뛰놀던 시골 개구쟁이들은 간곳이 없었다.

태공(太公)과 유오(劉C)도 잘 모셨다. 궁실에 못지않은 거처를 마련하고 따로 사람을 딸려 늙은 그들 부처를 정성들여 보살피게 했다. 뿐만 아니라 한왕의 형인 유백(劉伯)과 유중(劉仲)의 가솔들도 관중에 따라온 이들은 모두 살기에 어려움이 없도록 뒤를 봐주고 있었다.

한왕이 함곡관을 나가 하남(河南)과 한(韓)나라를 치고 그들 두 왕의 항복을 받은 것은 파촉 한중을 나와 관중을 휩쓴 기세를 관외(關外)로까지 활짝 펼쳐본 셈이었다. 거기에 비해 당장은 앞길을 막는 세력이 없는데도 패왕의 위세에 지레 겁을 먹고 군사를 돌려 관중으로 돌아온 것은 비굴한 움츠림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왕은 역양에 든 지 열흘도 안돼 그 회군(回軍)이 비굴한 움츠림이 아니라 한층 드넓게 펼치기 위한 바닥 다지기임을 보여주었다. 먼저 역상((력,역)商)과 근흡(근(섭,흡))에게 각기 적지 않은 장졸을 보태주고 아울러 글을 보내 하루빨리 농서와 북지를 평정하도록 재촉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관중 관외를 가리지 않고 크게 방을 써 붙이게 했다.

대략 그와 같은 내용으로, 아직 귀순하지 않은 토호들이나 다른 제후를 섬기는 장수들을 한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소하도 관중의 자원을 거둬들이고 나누어 쓰는 법령을 새로 지어 관중에서 다시 시작하는 한(漢)나라의 바탕을 다져나갔다. 소하에게는 지난번 한왕이 아직 패공으로 함양을 차지했을 때 승상부(丞相府)와 어사부(御使府)에서 모조리 손에 넣은 진(秦)나라의 문서와 도적(圖籍)이 있었다. 그 문서와 도적에 따라 세금을 매기고 군사로 쓸 장정(壯丁)을 뽑으니, 육국(六國)을 쳐 없애고 천하를 아우른 진나라의 풍부한 자원은 그대로 한나라가 오롯이 차지한 듯하였다.

그 밖에도 소하는 제도를 고치고 새로운 질서를 정해 거듭된 전란으로 거칠어진 관중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진나라 것이라고 쓸만한 것을 버리는 법은 없었으며, 전에 없던 것이라 해서 마땅히 세워야 할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 옛 진나라 관리라도 유능하면 주저 없이 불러다 썼고, 전에 한신을 천거할 때 그러했듯 졸오(卒伍) 포의(布衣)라도 재주만 뛰어나면 무겁게 써주기를 한왕에게 힘써 권했다.

장량도 그런 소하와 함께 한왕이 민심을 거둬들이도록 도왔다. 어느 날 조용히 한왕을 찾아보고 말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