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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데이트]장편극화‘1001’인터넷연재 만화가 양영순씨

입력 | 2004-09-17 18:49:00

양영순은 “만화로 그린 모습이 훨씬 낫다”며 사진 촬영을 고사하고 직접 자신의 캐리커처를 그렸다. -사진제공 양영순


“앞으로 작품에서 성(性)과 엽기적 요소를 자제할 겁니다.”

만화가 양영순(33)은 최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뜻밖의 말을 던졌다. 그의 만화에서 ‘성과 엽기’가 사라진다는 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1995년 데뷔한 그는 ‘누들누드’ ‘기동이’ ‘아색기가’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성과 엽기에 대한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펼쳐왔다. 앞으로는 어떤 작품일까.

▽첫 장편극화 ‘1001’=양영순은 7월 19일부터 매주 3회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를 토대로 한 ‘1001’을 포털사이트 파란닷컴의 웹툰코너 ‘엔타민’(ntamin.paran.com)에 연재하고 있다. 그에게는 첫 장편 극화이자 인터넷 데뷔작.

“리처드 F 버턴의 ‘아라비안나이트’(범우사)를 뼈대로 하지만 내용의 80%는 창작입니다. 천일야화가 세월에 따라 첨삭된 것처럼 ‘양영순의 천일야화’를 만들고 있는 셈이죠.”

‘1001’은 그의 말대로 성과 엽기적 요소보다 극적 스토리 전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등장인물 중 남자들은 ‘누들누드’ ‘아색기가’의 뭉툭한 변강쇠 스타일에서 사실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현재 26회까지 연재된 ‘1001’의 회당 조회수는 6만여회. 네티즌들이 이 만화를 다른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로 퍼가는 것을 포함하면 조회수는 10만회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인기 인터넷 만화 ‘순정 만화’의 작가 강풀은 “‘1001’의 탄탄한 데생과 스토리 라인에 주눅이 들 정도”라고 격찬했다.

▽아저씨 스타일=“30대가 되니, 긴 호흡을 갖고 인간을 다룬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총각 때야 성에 대해 거침없는 상상력을 발휘했지만, 결혼 7년째인 요즘은 성이 생활의 한 부분이죠. 아라비안나이트에도 성적(性的)으로 해석할 만한 요소가 수두룩하지만 이제는 인간의 고뇌와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보입니다.”

1998년 결혼한 그는 11월 첫 아이를 갖는다. 그는 “긴장 때문인지 부인이 임신한 뒤 나도 몸무게가 10kg 늘었다”고 말했다.

“만화가들이 아기를 낳으면 육아 만화를 많이 그리잖아요. 과거에는 ‘저런 것까지 그려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요즘은 ‘육아일기’에도 욕심이 납니다. 아기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고…. 체형도, 생각도, 만화도 아저씨 스타일로 변하나 봐요.”

▽인터넷 만화에 대한 전망=양영순은 인터넷 만화가 미래 만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극화 위주의 출판 만화 시장이 위축되면서 만화계 전체가 불황을 겪고 있죠. 인터넷 만화는 아직 에피소드 위주이지만 ‘1001’이 인터넷 장편 극화를 본격화하는 방아쇠가 됐으면 합니다. 빅 히트작은 장편에서 나오니까요.”

▽다음 작품=그는 한 스포츠신문에 3년간 연재 중인 ‘아색기가’가 끝나면 다음 작품으로 ‘철견무적’(가제)을 구상하고 있다. 이 작품은 데뷔 초 만화 잡지 ‘영점프’에 잠시 연재했던 학원물.

“그때는 폭력 장면이 많았는데 이제는 ‘근육질 남자들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처럼 판타지가 곁들인 서사극을 꼭 해보고 싶다”며 “판타지이지만 보통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현실을 풍자하는 이야기가 내 만화의 종착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