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시인
《한 호흡
꽃이 피고 지는 그 사이를
한 홉이라 부르자
제 몸을 울려 꽃을 피워대고
피어난 꽃은 한번 더 울려
꽃잎을 떨어뜨려 버리는 그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
꽃나무에게도 뻘처럼 펼쳐진 허파가 있어
썰물이 왔다가 가버리는 한 호흡
바람에 차르르 키를 한번 흔들어 보이는 한 호흡
예순갑자를 돌아나온 아버지처럼
그 홍역같은 삶을 한 호흡이라 부르자》
문태준의 시학(詩學)은 ‘느림’과 ‘순환’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 ‘맨발’(창비)에는 들숨과 날숨, 지는 꽃과 피어나는 꽃, 고요와 격랑, 뿌리와 잎을 노래한 시 한편 한편에 느림의 철학이 담겨 있다. 시인, 평론가 117명이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된 시 중에서 그의 표제작 ‘맨발’(현대시학 8월호)을 가장 좋은 작품으로 선정한 것도 이런 점을 고려한 때문일 것이다. ‘비 온 다음 뻘밭을 기어가는 지렁이 행보를 닮은’(시인 이성복의 평) 그의 시를 읽다보면 급행열차에 실려 가던 부산한 몸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맨발’ 중)
시인이 지난해 여름, 재래시장 어물전에서 개조개 한 마리를 보고 착상해 썼다는 이 시는 삶의 속도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또 개조개라는 하찮은 생명 하나를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 천천히 돌아온 사람’ ‘사랑을 잃고 슬픔을 견디어낸 사람’ ‘우는 것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양식을 탁발하러 나온 사람’ 등으로 빗댄 시인은 삶의 길이란, 결국 오래 걸려 느리게 홀로 가야 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삶은 원래 달고 쓰고 맵고 한 그런 맛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밍밍한 물맛 같은 거죠. 삶에서 별 큰 ‘맛’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겸손해지고, 비로소 소소한 행복들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삶은 원래 지겹고 반복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단절이 아닌 과정, 홑이 아닌 전체이며, 직선이 아니라 둥근 원이라는 것이 시인의 얘기다. 삶에 별 큰 맛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지금 여기’로 돌아와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역설이 있다는 것이다.
사물과 사람에 예민하다 보니, 시인은 자주 눈물이 난다고 했다. 삶의 진면목을 벌써 알아버린 듯한 이 애늙은이 서른넷의 젊은 남자는 때로 모든 것들의 이력과 사연을 느끼는 일이 너무 슬퍼 밤에도 ‘꺼이꺼이’ 운 적이 많다고 한다. 그는 “시를 제대로 낳았다고 느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솔직하고 담백한 성품 그대로 그의 시에는 화장기가 없다. 이희중씨(문학평론가·시인)는 해설을 통해 “문태준의 시는 단순한 묘사의 독창성이나 수사적 취향에 기댄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근원적인 체험의 깊이와 너비에서 비롯된다. 시인의 눈길은 풍경의 안쪽, 그리고 그 너머를 탐사하는 마르지 않는 샘으로 다가선다”고 평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