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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그때 그시절엔]화가 황주리씨와 음악감상실

입력 | 2004-09-19 19:05:00

1970년대 음악감상실 풍경. 이곳은 음악 마니아의 안식처이자 느림의 미학을 가슴으로 배우는 공간이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라디오방송도, 우체국도, 호텔도, 세탁소도, 백화점도 다 있는데 내 청춘의 날들에 가장 숨어 있기 좋은 방이었던 음악감상실은 사라지고 없다.

통행금지와 장발단속과 금지곡들로 얼룩진 그때 그 시절, 설상가상으로 나는 사춘기를 유난히 오래 앓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학교수업과 최루탄 냄새로 범벅이 된 거리의 공기로부터 도망쳐 어느 날 문득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이 서울 명동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한 대학생들과 고학력 실직자들과 재수생들의 쉼터이던 음악감상실, 어쩌면 그중에는 피곤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낮잠을 청하던 운동권 학생들도 끼여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음악감상실은 지금의 노래방과 컴퓨터게임방의 전신이라고 하기엔 분명 구분되는 특성이 있었다. 후자가 미친 듯이 돌아가는 속도의 문화를 모태로 한다면, 음악감상실은 요즘 한창 유행하는 ‘느림’의 개념을 현실화시켜 놓은 공간이라고나 할까.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 사람들과 함께 앉아 외롭지 않게 음악을 듣는 장소. 그런데 그런 곳이 정말 있기나 한 것이었을까? 우리 청춘의 시절이 하룻밤 꿈처럼 흘러 지나갔듯, 그 고요한 공간은 꿈속에나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곳에 들르는 사람들 중 바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분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 불안한 자신의 미래로부터 잠시 도망쳐 숨어 있기 좋은 방을 찾는 외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수많은 금기들로 둘러싸인 젊은 우리에게 자유라는 단어는 밥보다 소중했고, 꽃보다 아름다웠다.

쇼스타코비치와 말러를 즐겨 들었던 내 생의 음악광의 시간은 그때 이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며 손으로는 끝없이 낙서를 하면서, 그때 나는 훗날에 그리게 될 내 생의 밑그림들을 잔뜩 그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유 없이 불뚝 불뚝 솟아오르던 울화를 잠재우며 음악에 귀 기울였던 그 시간들은 권태와 낭비의 시간이 아니라 느리게 느리게 자기 앞의 생을 준비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문득 25년 전 명동의 음악감상실 필하모니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중 한 사람과 나는 한 세 번쯤 데이트를 했었다. 얼굴이 곱고 착한 심성을 지녔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억을 남기지 않은 채 그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나는 필하모니에 가지 않은 것 같다.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숨어 있기 좋은 방이 필요 없어진 걸까? 그 때처럼 삶의 여백이 많았던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가끔 노래방에 간다. 그러나 숨 돌이킬 시간도 없이 교대로 노래를 불러대는 노래방은 왠지 숨어 있기 좋은 휴식과 느림의 공간이 아니라 속도와 경쟁의 시간들의 연장인 듯 느껴진다. 그리고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를 부른 사람들의 기억도 필하모니에서 같이 음악을 듣던 사람들의 기억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는 기분이다.

문득 어제가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제의 생각을 오늘까지 간직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오래 사랑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 황주리씨는?

△1957년 서울 생 △이화여대 미대 서양화과,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미국 뉴욕대 대학원 졸업 △25회의 국내외 개인전과 200여회의 그룹 기획전 참가, 석남미술상 선미술상 수상 △산문집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날씨가 너무 좋아요’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