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독립 언론 ‘라디오 네덜란드’ 인터넷판은 지난 주말 ‘아주 슬픈 이야기’란 기사를 실었다. “실업률은 치솟고 경제성장은 더딘데 복지혜택을 줄인다니요. 이건 고통을 줄 뿐입니다.” 네덜란드 최대 노조인 FNV 위원장 인터뷰였다. 정부가 실업수당과 장애수당을 줄이고 은퇴연령을 67세로 높인다고 발표하자 발끈한 그는 10월 대규모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슬픈 건 이런 현실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노사정(勞使政) 화합의 네덜란드 모델로 알려진 ‘폴더모델(polder model)’의 시대가 갔다는 건 더 슬플지 모른다.
▷이 나라 경제장관은 석 달 전 “더 많이, 더 오래 일해야 한다”는 편지를 국민에게 보냈다. 동유럽과 아시아의 저임금 공세와 세계적 생산성 경쟁, 고령화에 대처하자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거다. 네덜란드 경제는 작년 ―0.9% 성장에서 올해 2·4분기엔 거의 1%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실업률은 7%나 된다. 1982년 노동계의 자발적 임금인상 억제와 사용자의 고용기회 확대, 정부의 세금 인하를 골자로 한 바세나르 협약 체결 이후 파이도 키우고 공평하게 갈라 먹는 것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네덜란드가 지금은 유럽에서도 ‘경제 천덕꾸러기’가 됐다.
▷“폴더모델의 시대는 빠르게 역사 속으로 가고 있다.” 그로닝겐대 경제학 교수 아르옌 반 비텔로스튀에인의 진단이다. 1990년대의 신나는 임금상승은 결국 인플레로, 국가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너그러운 복지제도를 악용하는 노사가 늘면서 열심히 일해 세금 내는 사람만 손해 보는 형국이 됐다. 과다한 노동시장 규제, 기업하기 나쁜 여건 등을 경고한 매킨지 보고서가 1997년에 나왔지만 호황에 취한 그들은 이를 외면했었다.
▷네덜란드식 노사모델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노동문제의 해법이라며 제시했던 시스템이다. 아마도 2001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네덜란드의 잔치가 끝났음을 깜빡한 것 같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네덜란드의 성공은 폴더모델 때문이 아니라 건전한 금융 재정정책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세상 변화를 모르고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다간 국가경제만 망가진다는 현실을 일러 주는 슬픈 모델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