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서초구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사무실에서 강지원 변호사(앞줄 오른쪽),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등 명사들이 다음 달 2일 경기 수원시에서 열릴 마당극 ‘변학도의 생일날’을 공연하기 위해 연습에 한창이다. -원대연기자
“춘향아, 그만 속 썩이고 내 수청을 들라…. 아이고, 대사를 잊어버렸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 사무국. 창작마당극인 ‘변학도의 생일날’ 연습이 한창이던 사무실이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근엄한 정장 차림에도 불구하고 능청스럽게 ‘변사또’ 역을 소화해 내던 강지원 변호사가 그만 대사를 잊어버렸기 때문. “춘향이가 너무 예뻐서 그러느냐”는 주위의 핀잔에 그는 “이 거 한참 외워야겠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변학도의 생일날’은 명사들의 사회운동 모임인 ‘성숙한 사회 가꾸기 모임’의 두 번째 마당극. 다음달 2일 경기문화재단이 경기 수원시 문화의 전당에서 개최하는 ‘실학축전 2004’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공연할 예정이다.
이날 연습에 참가한 명사는 강 변호사를 비롯해 김태길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줄사또’ 역), 이명현 전 교육부 장관(‘색사또’ 역),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뻥사또’ 역),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교수(‘방자’ 역), 오현옥 대진대 교수(‘성춘향’ 역), 수필가 문혜영씨(‘향단이’ 역) 등.
이 밖에도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이한구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손봉호 동덕여대 총장 등이 포졸, 망나니 등 다양한 배역으로 출연한다.
황 교수는 “풍자와 해학을 통해 성숙한 사회로 가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마당극을 준비했다”며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는 춘향이와 이도령을 ‘철학도’로, 변학도를 비롯한 ‘사또들’을 타락한 현실주의자로 대비시켜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줄 황금만능주의 향락주의 사기꾼 등을 각각 ‘줄사또’ ‘돈사또’ ‘색사또’ ‘뻥사또’로 풍자했어요. 변학도는 온갖 부정부패의 ‘종합세트’ 같은 역할이고요.”
마당극은 각종 사회악의 표상이 득세하는 현실이지만 결국은 춘향과 같은 철학적 이상을 향한 올바른 삶이 승리하고 화해를 이룬다는 권선징악적 내용으로 전개된다.
연출을 맡은 극단 금시조 상임연출 임창규씨는 “워낙 바쁜 분들이라 함께 모여 연습하는 게 쉽지 않지만 함께 극을 만들어 가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공연에서는 이 밖에도 교수 등이 참여하는 탭댄스, 노래 등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질 예정이다. 이들은 “평소의 점잖은 모습과는 정반대의 ‘망가진’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