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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우석칼럼 전문]-안의 걱정, 밖의 걱정

입력 | 2004-09-21 10:32:00


제12차 한.일포럼에 다녀왔다. 일본에서도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시모노세키(下關)에서 열렸는데 옛날엔 조선 통신사들이 거쳐 갔고 근년엔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으로 인연이 깊은 곳을 고른 것 같다.

한국과 일본이 만나는 회의에 가보면 패턴이 비슷하다. 한국이 대개 직설적.공세적으로 나오고 일본이 신중하고 우회적이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시대와 상황이 바뀐 때문인지 멤버 구성 때문인지 일본 측에서 적극적으로 묻고 의견 개진도 했다. 직설적 표현들도 더러 썼다. 자주 오래 만나 낯이 익기도 했지만 한국 돌아가는 사정이 정말 궁금하고 답답했던 것 같다.

한국 외교 진폭 큰 이유 궁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관심들이 많았다. 안보, 대북 문제, 한.미 관계에서 친일 등 과거사 규명, 최근 터진 남한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솔직한 의구심을 표명했다. 자유무역협정(FTA) 등 당면 경제 문제엔 관심은 보였지만 뜨겁지는 않았다. 한.일 FTA 협정을 빨리 타결해야 한다는 원칙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FTA 타결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감당하는 것이 서로 쉽지 않다는 것을 이심전심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보나 외교 문제엔 사태 인식부터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정책 기조나 외교의 진폭이 매우 큰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한국에선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를 매우 궁금해 했다. 그것은 발전을 위한 진통이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축으로 하는 국책 기조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일부 대표들의 간곡한 설명도 역부족이었다.

또 한.미.일의 튼튼한 유대와 우호관계는 여전하다는 다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설명에 대해 한국 참석자들조차 완전한 공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엔 한국 대표와 일본 대표로 나뉘었는데 이젠 한국 대표도 A.B그룹으로 분화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 사정에 대한 일본의 깊은 관심은 참석자들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이 이틀 동안 꼬빡 참석해 연설도 하고 의견도 교환했다. 일본의 관방장관이라면 내각을 이끌고 가는 핵심 요직이며 후쿠다 의원은 얼마 전 물러나긴 했지만 여전히 일본 정계의 실력자다.

후쿠다 의원이 준비된 메모를 갖고 와 일본의 정치사회 변화와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연설했다. 일본도 정치인들이 많이 세대교체되어 한.일 간 인적 채널이 가늘어졌다면서 새로운 신뢰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또 양국 간엔 미래지향적 자세에서 자제와 관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함축적이지만 매우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된다.

요즘 일본 사람들을 만나면 으레 '겨울연가'와 배용준 이야기를 한다. 일본에서 매우 인기가 있고 한국을 좋아하는 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제 한.일 간엔 벽이 상당히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국에서 친일파를 청산한다고 나오니 꼭 여우에 홀린 것 같다는 한 신문의 사설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한.일 양국 간 자제와 관용을"

여기서도 일부 대표들이 그것은 지금의 일본을 겨냥한 것은 아니며 우리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이라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일본 측은 60여년 전의 친일행위를 이제 조사한다는데 그것이 국제적으로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번엔 매우 자유로운 토론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일본의 매스컴들이 비중 있게 다룬 핵실험 문제를 한국 신문들은 왜 그렇게 작게 취급했느냐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현역 언론인이 답변을 통해 지금 한국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으며, 특히 핵 개발을 비밀리에 수행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선 한국의 A.B그룹 간에 이견이 없는 것 같았다.

요즘의 한국 상황에 대해 안에서도 걱정이 많지만 밖에서도 걱정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전혀 우려할 바 없다는 낙관론에 대해선 그렇게 믿을 만한 객관적 근거와 정보가 있어서인지 진통이 있더라도 확 바꾸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인지 혹은 처한 입장 때문인지 알기 어렵다고 견해가 갈렸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