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내 한국학연구소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인 교육 전문가 한 분을 초청했다. 그 전문가는 “제가 밖에 나오면 이렇게 전문가 대접을 받지만, 집사람은 항상 당신이 한국 교육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느냐, 핀잔을 준다”는 고백으로 자신의 발표를 시작했다.
▼조기유학이 代案이 된 세상▼
2008학년도 대학입시 개선안 발표 이후 중학교 3학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 마음은 착잡하기가 이를 데 없는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학원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에서 몇몇 명문대가 고교별 등급을 따로 관리해 왔다는 문제 제기까지 하고 보니 더욱 불안하다. 여기에 대학입시를 관장하는 책임 있는 인사들이 나서 ‘고교 내신에 따른 학생 선발은 로또복권 수준이다’, ‘수학능력시험 등급제론 변별력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항의성 발언까지 하니, 학부모들로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건 아닌지, 정말 우리 아이만 손해 보는 건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한국사회에서 ‘교육문제’는 단순히 ‘교육만의 문제’가 아님은 온 국민의 상식이다. 국민 저마다 교육 전문가가 되고 보니, 공교육 정상화든 사교육비 경감이든 교육부가 내세우는 명분에는 굳이 반대하지 않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 가서는 저마다의 손익계산서가 달라지기에 최소한의 합의점을 찾기조차 불가능한 혼란상을 연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의 교실 붕괴 상황과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을 더 이상 방치할 순 없는 일. 그렇다면 ‘솔직함이 최선의 방책’임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것 같다. 학부모가 가장 우려하는 바야 ‘우리 아이 내신 성적의 공정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고, 대학측에서 문제 삼는 바라면 ‘신뢰할 수 없는 내신 성적과 변별력 없는 수능 등급제로 어찌 우수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고, 고교 선생님들의 불만인즉 ‘대학이 고등학교를 등급화하는 편법을 쓰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지 않던가. 그 와중에 학부모들은 ‘역시 조기유학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데에 귀가 솔깃하게 되고, 대학은 대학대로 본고사 부활의 가능성을 흘리고, 일부에선 고교 평준화 정책이야말로 고교간 학력 격차의 주범이니 이를 폐기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문제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논의가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데에 있다. 조기유학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된다면 두뇌 유출은 물론이요 경쟁력 있는 인재 확보 또한 포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 대학 본고사나 고교 입시가 부활되기라도 한다면 공교육 정상화는 어찌할 것이며 사교육비 경감은 물 건너가는 일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입시지옥에 시달리고 있는 불쌍한 우리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각자 자신의 입장과 우려만 내세운다면 우리네 교육환경은 지금보다 더욱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이 또한 아무도 바라지 않을 터다. 솔직히 내신 성적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교사를 향한 불신과 치맛바람의 부활 가능성만 앞세우지 말고 현실성 있는 묘안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짜내 보면 어떨까.
▼대학-고교 협의기구는 어떨까▼
국민의 미묘한 정서에 반하고 싶지 않은 대학의 입장에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은 일면 이해가 가나,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미봉책임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현재 지역간 학교간 학력차의 주범으로 고교 평준화가 지목되고 있긴 하지만, 학생들 학력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임은 익히 검증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수한 인재를 가려내 유능한 일꾼으로 키워 내고 싶은 대학의 입장을 십분 존중해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최대한 확보해 주는 것이 최선 아닐까. 혹 이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 해도, 일단은 대학의 의지와 자정 능력에 신뢰를 보내 주면 어떨까. 차제에 대학과 고교간에 협의기구를 구성해 공교육 정상화와 우수한 인재 발굴 및 양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안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역시 교육 현실을 모르는 전문가의 망상으로 치부될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