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국가보안법에 대해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한 뒤 본격적인 협상을 앞둔 여야가 내부 이견 조율에 진통을 겪고 있다. 국보법 처리 방향을 둘러싼 여야 내부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당 지도부는 21일 국보법 폐지에 따른 보완책을 추석 연휴 전에 결정하겠다던 당초 방침을 변경해 추석 이후로 연기했다. 이는 당 내 이견 조정이 쉽지 않은 고충을 내비친 것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보법 폐지 발언 이후 ‘국보법 폐지’ 당론을 확정했으나 폐지 후 방향에 대해선 형법 보완과 대체입법을 놓고 소속 의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단은 ‘폐지 후 형법 보완’ 쪽이 우세한 편이다. 이를 주장하는 측은 별도의 대체입법 없이 형법 조항만 보완해도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초 국보법 폐지안에 서명했던 임종석(任鍾晳) 의원 등 386 운동권 출신과 개혁성향 의원 87명이 이 같은 흐름에 합류했다.
반면 당 내 실용파 및 관료 출신 의원들은 ‘폐지 후 대체입법’ 진영에 집결해 있다. 이들은 국보법 폐지에 따른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선 형법 보완으로 미흡하기 때문에 별도의 대체입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재건(柳在乾) 안영근(安泳根) 의원 등이 주축이 된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모임(안개모)’이 대체입법을 주장하고 있다. 관료 출신인 김진표(金振杓) 조성태(趙成台) 의원 등도 동조하고 있다.
한편 이부영(李富榮) 의장과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다.
▽한나라당=박 대표가 국보법의 ‘정부 참칭(僭稱)’ 삭제 및 법안명칭 변경 가능성을 밝힌 뒤 당 내 이념적 스펙트럼이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박 대표의 입장 선회에 대해 남경필 원희룡(元喜龍) 정병국(鄭柄國) 의원 등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은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규택(李揆澤) 최고위원과 임태희(任太熙) 대변인, 진영(陳永) 대표비서실장 등도 박 대표를 엄호했다. 이들은 남북이 대치하면서도 화해와 교류를 추구하는 ‘이중적’ 현실을 감안해 정부 참칭 조항을 삭제하는 등 전향적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박 대표 체제에 맞서 비주류 노선을 선언한 김문수(金文洙) 의원 등 일부 의원들도 국보법 문제에 관해선 박 대표의 견해에 공조할 뜻을 내비쳤다.
반면 보수 성향인 영남권 출신 김용갑(金容甲) 김기춘(金淇春) 이방호(李方鎬) 의원 등은 박 대표의 입장 선회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박 대표는 지지하지만 국보법 문제에 관한 노선은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용갑 의원은 “국보법의 ‘정부 참칭’ 조항과 법안 명칭은 체제 수호의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박 대표를 비판했다.
한편 고진화(高鎭和) 배일도(裵一道) 의원은 국보법의 완전 폐지를 주장하고 있어 국보법 문제에 대한 당론을 모으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