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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核주권' 내세워 국제 핵질서에 도전

입력 | 2004-09-22 01:30:00


‘우라늄 농축을 위한 변환(convert)을 시작했다’는 이란의 공표가 가져올 파장은 쉽게 가늠하기 힘들다. 특히 이란 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미국이 어떤 대응조치를 취할지 주목된다.

미국은 1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 결의안을 통해 유엔 안보리 상정을 관철시키려 했지만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3국의 반대에 부딪혀 ‘시한부 유예’로 물러섰었다. 그러나 이란이 노골적으로 ‘농축 강행’을 선언하고 나서면서 사태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의 핵 개발 현황=레자 아그하자데 이란 원자력기구 의장이 21일 IAEA 연차 총회장에서 밝힌 우라늄 변환실험은 우라늄을 헥사플루오라이드(UF6)라는 기체로 만드는 것이다. UF6는 원심분리법을 통한 우라늄 농축의 원료가 되는 물질.

이란 핵 개발에 정통한 한 외교관은 “8월 말에 변환실험을 실시한 것이 분명하다”며 “UF6 기체 생성 단계에서 실험을 일단 중단했다”고 AP통신에 전했다. 그리고 변환과정을 완료하라는 이란 지도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모하메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이날 테헤란에서 “평화로운 핵 기술의 일부로 우라늄을 농축할 권리를 행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농축을 강행하기 위해 IAEA 탈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외신들은 아그하자데 의장이 ‘변환단계’가 어디까지 갔는지, 우라늄 원광석 40t 중 어느 정도를 변환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란이 이스파한 원자력 시설에서 우라늄 농축의 완료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국제사회 충격=하루 전만 해도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이란의 핵 개발이 ‘절박한 위협’은 아니다”며 이란 핵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긴장과 갈등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이란의 ‘농축 강행’은 IAEA뿐 아니라 온건론을 펴 온 EU를 당혹스럽게 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이란 핵문제는 11월 IAEA 정기이사회에서 긴급 현안으로 다뤄질 것이 분명하다. 또 2개월도 채 남지 않은 기간에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IAEA 정기이사회가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물론 변수는 있다. 이란의 부시르 원전 건설을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는 “이란은 원자력을 평화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악의 축’ 국가인 이란에 대한 강경조치를 주장하는 미국 내 여론이 거세지면서 선제 공격론이 다시 대두될 가능성도 있다. 이란의 핵무기 확보를 우려하는 이스라엘의 선제 행동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의 원자로를 기습 폭격한 적이 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