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 형'에서 경상도 마을의 주먹 대장 종현으로 출연한 원빈. 그는 스포츠 머리에 스크래치를 낸 강인한 이미지로 변신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가 단 한 번 '형'이라고 말하는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난다. -이종승기자
그가 “형…”이라고만 불러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원빈(27).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형”을 울부짖던 쓸쓸한 동생. 그가 다시 ‘형’을 말하며 돌아왔다.
영화 ‘우리 형’(감독 안권태·10월 8일 개봉)에서 그는 경상도 한 마을의 주먹대장 종현이다. 종현은 약골에 ‘언청이(순악구개열)’지만 착하고 공부를 잘해 어머니의 보살핌을 독차지하는 형(신하균)을 때론 시기하고 때론 보호한다.
“‘태극기…’의 형은 큰 존재죠. 동생이 의존만 하는…. 이 영화의 ‘형’은 오히려 동생에게 기댈 수밖에 없어서 슬픈, 그런 형이죠.”
원빈에겐 눈물이 참 잘 어울린다. TV 드라마 ‘꼭지’에서 여덟 살 연상의 다방 마담에게 “왜 우린 안 된다는 거야!” 했을 때도,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니” 했을 때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형, 우린 같이 돌아가야 돼” 할 때도 그는 늘 뭔가를 눈물겹게 토해내고 있었다.
“울지 않은 작품이 거의 없었어요. 눈물이 저와 맞는 거 같아요. 맘속에 맺힌 게 많아서일까요. 저희 누나가, 다른 배우들은 슬프게 우는데 전 서럽게 운대요.”
‘우리 형’은 원빈이 마구 상욕을 해대는 최초의 작품이다. 그는 “이 ×새끼들아. 내 ×라 피곤하거든? 다음에는 떼로 덤비라, ×발 놈들아”하며 싸움질을 일삼고, 여고생 미령이 “생리통이 심해 씹었다네. 아스피린. 그 쌉쌀한 맛 속에 숨어 있는 진실된 고백…”이란 자작시를 발표하는 모습에 반해 투박한 연애편지를 쓰기도 한다. ‘나는 당신의 보디가드. 사랑의 보디가드.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새벽에도 달려갑니다.’
“좀 강인해졌어요. ‘태극기…’ 이후 제가 변한 거 같아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꽃미남’이란 이미지에서 뭐랄까, 남자로….”
‘우리 형’에서 스포츠머리에다 삐쭉 스크래치를 내는 외모상의 ‘모험’을 감행한 것도 그가 고집한 것이었다.
휴대전화 광고모델로 활약할 만큼 ‘첨단’의 도회 이미지를 갖고 있는 원빈이지만, 그의 과거는 무척 달랐다. 그는 강원 정선군 북면 여량리 산골에서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기잡고 미역 감고 뛰어놀다가 해질 무렵이 되면 시커멓게 탄 얼굴로 집에 들어갔죠. 저녁밥 먹고 나면 온 세상이 그냥 까맸어요. 마을에 가로등이란 게 없었거든요. 뒹굴며 이런저런 공상하다가 잠자는 것밖엔 할 게 없었죠. 지금처럼 샤워하고 자는 건 상상도 못했어요.”
영화에서처럼 실제 형을 “너”라고 부른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다섯 살 위였던 형은 나처럼 무뚝뚝했지만 항상 나를 믿어주고 조용히 뒤에서 바라보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면서 “우리 집 남자들은 우리 집 여자들과 달리 하나같이 내성적이고 조용해 재미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비좁은 집에서조차 서로 만나는 걸 멀리했다”며 웃었다. 대신 ‘난 남자고 넌 여자니깐 널 이겨야 한다’는 단순하고 철없는 생각에 누나들과는 티격태격한 기억이 많다고 했다.
소년 시절 원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다름 아닌 ‘브라보콘’이었다.
“그땐 (브라보콘이) 300원인가 했어요. 추석 같은 명절 때나, 친인척이 찾아오거나, 집안에 행사가 있거나, 엄마 기분이 무척 좋을 때 겨우 얻어먹을 수 있었죠. 아이스크림 하나에 들어있는 게 너무 많고…. 그걸 먹으면 마음이 뿌듯했어요.”
인터뷰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원빈의 큰누나가 운영하는 일본식 어묵집에서 진행됐다. 누나 김혜경씨는 “빈이가 어려서부터 너무 예뻐 열 살 위인 내가 업고 다녔다. 개구쟁이였다”고 회고했다.
큰누나가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서 원빈의 형제들도 하나 둘 상경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한 자동차 관련 회사에 다니기 위해 올라온 원빈이 연예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신문에서 한 연예인의 재충전을 다룬 ‘3개월 동안 쉬겠습니다’란 제목의 기사를 보고나서였다.
“기사를 보니 연예인은 돈도 잘 벌면서, 쉬고 싶을 때 쉬고, 쉬는 것조차도 대단한 일처럼 알아주고, 나중에 컴백하면 또 컴백했다고 관심을 쏟아주고 하는 것 같았어요. ‘바로 저거다’ 싶었어요. 그땐 스타가 된다는 것의 쓸쓸함을 10분의 1도 알지 못했죠.”
원했던 대로 이젠 “CF 한 건에 수억원씩 벌고, 어디 여행도 가고” 하는 바로 그 톱스타가 됐지만, 원빈은 새로운 초조함에 시달린다고 했다.
“제가 나오는 광고 포스터들이 길거리에 쫙 깔린 걸 보면 너무 부담스러워요. 전 더 이상 멈출 수가 없어요. 앞을 보면 오르막길이고, 뒤를 보면 내리막길이고…. 저를 보는 수많은 시선, 제가 만들어 낸 환상…. 하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거나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 단 한방에 추락하겠죠? 항상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을 깨는 게 제 숙제예요. 그래야만 연기도 생활도 더 나아질 거라고 믿어요.”
갑갑하고 쓸쓸할 땐 팬들이 보내준 선물과 편지가 위안이 된다. ‘원빈…씨,…바…가…우…요(원빈씨, 반가워요)’라고 일본인 팬이 서툰 한글로 써 보낸 편지엔 따스한 진심이 녹아 있다.
“저도 모르게 때가 묻고 가식적인 면이 생겨나요. 그런 나 자신을 볼 때마다 너무 싫어요. 옛날 시골에서 땡볕 받으며 뛰어놀 때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제가?”
‘우리 형’에서 원빈은 “형이라고 한번만 불러줄래”하고 간청하는 형을 결코 “형”이라 불러주지 않는다. 대신 “쌀쌀하다”며 자신의 겉옷을 벗어 턱 걸쳐준다. 그에겐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느껴지는 뭉클한 게 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