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각 영화사의 로고와 음악이 먼저 등장해서 분위기를 잡는다. 오프닝 로고, 일명 ‘리더 필름’이라는 이것은 이름은 낯설지만 할리우드 키드들의 기억 속에는 영화의 내용보다 더 뚜렷이 각인돼 있다.
성난 듯 포효하는 사자가 로고 안에 들어차는 MGM, 회색빛 건물을 배경으로 WB라는 글자가 웅장하게 등장하는 워너 브러더스, 거대한 산에 별이 둘러쳐지는 로고는 파라마운트사. 콜럼비아 영화사는 횃불을 든 자유의 여신상을, 트라이스타사는 페가수스가 날개를 펄럭이며 달려오는 오프닝 로고를 선보였다. 20세기폭스처럼 짧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시각적인 로고보다 더 유명한 것도 있다.
옆 사람과 수다를 떨다가도 오프닝 로고가 뜨기 시작하면 자세를 고쳐 앉으며 설레는 마음을 가다듬었던 기억들을 누구나 한번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회사를 알릴 목적으로 타이틀 시퀀스 앞에 붙는 영화사의 로고들. 특히 할리우드 영화들은 오래전부터 특색 있는 오프닝 로고로 관객들에게 회사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우리나라 영화사들은 90년대 후반까지도 특별한 영상 없이 검은색 배경에 영화사 이름만 적거나 간단한 이미지만으로 로고를 만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 영화계에도 영화사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로 자리잡은 것 같다. 최근에는 마치 광고처럼 재미있는 오프닝 로고들이 등장하여 그 회사만의 독특한 색채를 보여준다.
은색 글자들이 떠다니고 빨간 점이 박혀 글자를 완성하는 싸이더스, 물음표가 그려진 상자 안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동그란 공이 통통 뛰어다니는 쇼박스,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선녀가 종 안으로 날아 들어가 은은한 종소리를 울려 고전적인 미를 부각시키는 코리아픽처스 등 여러 영화사가 저마다의 로고를 등장시킨다.
영화사 로고를 여러 편 제작한 컴퓨터그래픽 전문회사 ‘모팩’의 한동성 실장은 “마치 광고처럼 10초에서 60초 사이에 승부를 거는 오프닝 로고를 만들기 위해서는 영화 만드는 것 못지않게 머리를 싸매야 하지만, 영화 볼 때마다 나오는 로고를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관객들에게 단순한 텍스트보다 더욱 강한 인식을 심어주는 참신한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 로고를 공모하기도 하고, 외국에 나가 만들어오는 회사들도 있다. 이제는 할리우드 못지않게 우리 영화사들의 오프닝 로고가 전 세계 관객들의 머릿속에 각인되기를 바란다.
채윤희(영화 홍보사 ‘올댓 시네마’ 대표·uni1107@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