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기적처럼’
홍콩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2046’으로 문을 열고 한석규 주연의 한국 영화 ‘주홍글씨’로 막을 내린다.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 7일부터 15일까지 부산 수영만 야외상영장을 비롯해 해운대 메가박스, 남포동 대영시네마 등에서 개최된다. 역대 최대 규모로 63개국 264편이 상영된다. 9일간 펼쳐지는 ‘영화의 바다’의 하이라이트를 살펴본다.
● 개, 폐막작
개막작 ‘2046’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기존 영화제에서 상영된 작품을 영화제 ‘간판’격인 개막작으로 선정한 것은 꺼림칙하지만 영화의 완성도는 손색없다는 평가다. 홍콩의 중국 반환 50주년이 되는 해를 가리키는 ‘2046’은 ‘화양연화’(2000년)의 짧은 사랑 이야기 이후의 몇 년을 다뤘다.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 투게더’ 등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로 꼽히는 왕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과 ‘화양연화’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량차오웨이(梁朝偉)의 음울한 카리스마가 만났다. 칸영화제 뒤 부분적인 재촬영과 재편집을 거친 버전이 상영된다.
폐막작 ‘주홍글씨’의 중량감도 만만치 않다. 영화는 살인사건과 욕정에 휩싸인 강력계 반장 기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멜로로 한석규와 이은주 성현아 엄지원이 출연한다. 199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했던 한석규의 부활과 2000년 ‘인터뷰’ 이후 4년 만에 장편을 연출하는 기대주 변혁 감독의 변화가 관심거리다.
● 9개 섹션
영화제는 ‘아시아 영화의 창’(45편), ‘한국영화 파노라마’(13편), ‘와이드 앵글’(74편), ‘뉴 커런츠’(12편), ‘월드 시네마’(50편), ‘오픈 시네마’(7편), ‘크리틱스 초이스’(10편) 등 9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아시아 영화의 창’은 중국 일본 태국 인도 등 아시아 영화의 현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섹션이다.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됐던 대만 거장 허우샤오셴(候孝賢)의 ‘카페 뤼미에르’는 놓칠 수 없는 작품.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에게 바치는 오마주 영화로 가족과 사랑, 새로운 생명을 다뤘다.
일본 영화로는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호숫가 살인사건’과 ‘러브 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온지 감독의 신작 ‘하나와 엘리스’ 등이 눈길을 끈다.
‘월드 시네마’섹션에는 장 뤽 고다르의 ‘아워 뮤직’, 에밀 쿠스트리차의 ‘인생은 기적처럼’ 등 거장의 작품은 물론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화제작이 출품됐다. 세네갈 감독 우스마 셈벤의 ‘물라데’는 아프리카 국가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에는 일본 이구치 나미의 ‘개와 고양이’, 한국 노동석의 ‘마이 제너레이션’ 등 6개국 신인 감독 12명의 독창적인 작품이 선보인다. ‘한국영화 파노라마’에서는 최근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을 비롯해 ‘인어공주’ ‘올드 보이’ ‘쓰리, 몬스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등 화제작을 상영한다.
● 특별기획 프로그램
그리스 거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회고전’이 하이라이트다. 군부 독재와 인권 탄압에 시달렸던 그리스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3부작 ‘1936년의 나날’ ‘유랑극단’ ‘사냥꾼들’을 비롯해 그의 대표작 12편이 상영된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선보인 20세기 현대사에 관한 3부작 중 첫 작품 ‘울부짖는 초원’도 포함돼 있다.
‘애니 아시아’는 최근 급성장하기 시작한 대만 인도네시아 홍콩의 애니메이션을, ‘한국영화 회고전’은 ‘한-홍콩 합작시대’라는 제목으로 ‘달기’ ‘생사결’ ‘여감방’ 등 5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제작된 한국과 홍콩의 합작 영화를 상영한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