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건설업체인 S사는 2001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다는 혐의로 과징금 21억원을 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계열사간 상호 빚보증을 풀기 위해 비상장 계열사인 D사 주식을 D사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적정가격보다 너무 낮게 팔았다는 게 이유였다.
회사는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을 냈으며 올 5월 4년4개월 만에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공정위가 상고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회사인 S사는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외자유치 과정에서 업무와 무관한 자산을 매각한다는 양해각서(MOU)에 따라 계열 모(母)회사에 주식을 넘겼다가 부당지원 혐의로 적발돼 과징금 3억2700만원을 내라는 공정위의 판정을 받았다.
서울고법은 올 1월 S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공정위가 상고하는 바람에 이 사건 역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문제는 공정위가 고법에서 패소를 해도 상고하는 경우가 많아 공정위에 한번 걸리면 기업들은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3, 4년간 ‘피 말리는’ 소모전을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의 이근식(李根植·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연도별 행정소송 계류현황’에 따르면 2001년 이후 기업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은 모두 195건으로 이 중 진행 중인 사건은 137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진행 중인 사건의 69%인 94건은 1년 이상 법원에서 끌고 있는 장기 소송이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기업들이 불복해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도 103건으로 소송가액으로는 3524억3400만원이나 된다. 이 중 78%인 73건은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고법에서 판정이 난 73건 중 공정위가 이긴 경우는 28건에 그친 반면 기업들이 승소한 경우는 27건, 일부 승소 판결도 18건으로 2001년 이후 소송 건수의 61%가 공정위 판정을 뒤집는 것이었다.
A기업의 한 간부는 “3, 4년간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기업 이미지 훼손은 물론 유무형의 영업 손실이 막대하다”고 토로했다.
이 의원은 “공정위 판정이 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정책당국의 권한남용이나 무리한 판정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들의 부당행위나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선 과징금 부과제도가 꼭 필요하다”면서 “억울한 사정이 있을 경우엔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구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