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자치경찰제를 본격 도입하겠다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발표는 매우 고무적이다. 그동안 정치권과 경찰학계 등에서 계속 요구해 왔지만 매번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됐던 터라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번에 제시된 자치경찰제안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시군구 등 기초자치단체장에게 자치경찰제 도입 선택권을 주도록 한 것은 자치경찰제의 근본인 수요자 중심, 곧 주민 중심의 경찰서비스 제공이라는 이념을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자치경찰의 인력 규모와 관할 사무의 불균형이 지나치다는 우려가 있다. 자치경찰 인력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0∼100명이며 관할 사무는 방범순찰, 기초질서사범 및 보건위생 단속, 교통, 환경 감시, 문화재 및 관광지 관리, 관세사범 등 경제범죄 단속, 근로 감독 및 산업안전 사무 등으로 매우 광범위하다.
이 가운데 방범순찰 등의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는 상당한 전문적 지식과 업무 처리 기술, 그리고 장기적인 시간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충분한 전문 인력의 확보가 절대적이다. 그러나 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상태를 감안할 때 이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결국 현재처럼 특별사법경찰관으로서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업무영역 다툼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12신고 체제를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112신고 접수자가 사안별로 판단해 자치경찰이나 국가경찰에 출동을 지시할 수 있다. 그러나 신고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관할권이 애매한 경우에는 접수자가 해당 사안의 업무 주체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어려워 출동 지시가 지체될 수 있다. 지시가 떨어져도 양측이 서로 업무를 떠넘기는 등 분쟁이 일 소지가 있다. 이 때문에 생기는 피해는 온전히 주민의 몫이 될 것이다.
한편 자치경찰에 대한 인사권을 자치단체장에게 어느 정도 줄 것인지도 앞으로 첨예한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자치경찰의 채용 승진 전보 교육 등 모든 인사권을 자치단체장이 행사하지 못한다면 지휘 감독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이다.
국가경찰 중 3000여명을 차출해 자치경찰로 임용한다는데 그 선정 기준 및 자치경찰과 국가경찰간의 보수 및 후생 복지 수준의 형평성, 청원경찰과 공익근무요원에 대한 경찰권 부여 여부 등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가 모두 해결된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남는다. 자치경찰의 본래 의미가 주민이 지역의 경찰사무를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처리하는 제도라고 할 때, 과연 현재 제시된 안은 그런 의미를 제대로 살리고 있는가. 그보다는 그동안 자치단체가 소극적으로 행사하던 보건 위생 환경사범 단속 등의 행정경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 위에 순찰업무와 경범죄단속권을 고명과 양념으로 얹어서 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주장하는 주민생활 중심의 자치경찰은 헛구호일 수밖에 없다.
15만여명의 거대한 국가경찰력으로도 제공하지 못하는 생활치안을 고작 6000여명의 자치경찰이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허경미 계명대 교수·경찰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