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오동진의 영화파일]‘스텝포드 와이프’의 니콜 키드먼

입력 | 2004-09-23 19:16:00

니콜 키드먼의 다채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스텝포드 와이프’.


니콜 키드먼의 신작 ‘스텝포드 와이프’를 보면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첫째, 프랭크 오즈 감독은 1975년에 만들어졌던 본격 스릴러 원작을 왜 코믹한 분위기로 바꾸려고 했을까. 영화를 조금 더 보다보면 75년 영화와 이번 리메이크의 모태가 된 원작소설의 작가 아이라 레빈은 왜 이렇게 무서운 얘기를 쓰려고 했을까 하는 두 번째 질문이 생긴다. 하지만 영화를 거의 다 볼 때쯤이면 이렇게 무서운 얘기를, 21세기 백주 대낮에 도대체 코미디로 보지 않는다면 관객들이 과연 끝까지 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실제로 이번 리메이크 작에서 우스운 장면과 분위기를 빼면 꽤 으스스한 얘기가 되고 마는 게 바로 이 영화 ‘스텝포드 와이프’다.

잘 나가던 방송제작자 조안나는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계기가 된 살인사건 때문에 파면된다. 그 충격으로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하던 그는 남편과 함께 전원마을 스텝포드란 곳으로 이사한다. 이웃 여인들은 모두 금발의 외모를 한껏 자랑하는 절세미인들. 게다가 모두 친절한 이웃들이다. 그렇지만 조안나는 곧 이 스텝포드 마을의 여자들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조안나는 여자들의 행태를 뒤쫓다가 이 마을의 엄청난 비밀을 알아내게 된다. 마을의 남편들이 자신의 아내를 모두 사이보그로 만들어 버린 것. 조안나 역시 마을 남자들에게 동화된 남편에 의해 사이보그가 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니콜 키드먼

원작자 레빈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만든 끔찍한 공포영화 ‘악마의 씨’의 작가. 그런 만큼 ‘스텝포드 와이프’의 원래 결말도 꽤나 끔찍하고 비극적인 것이었다. 브라이언 포브스 감독이 캐서린 로스를 기용해 만든 30년 전의 영화는 원작에 충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오즈 감독은 그 결말을 180도 뒤바꿨다. 원작에 대한 해석이 어느 게 더 옳고 또 더 나은 건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키드먼을 주연으로 내세운 만큼 오즈 식의 결말이 보다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키드먼은 과거 여러 영화를 통해 보여줬던 다양한 캐릭터의 연기를 이번 작품 이곳저곳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종합적으로 발산하고 있다.

허위의식으로 똘똘 뭉쳐있는 도시 커리어우먼의 이미지도 보여주고(‘투 다이 포’), 남편의 행동을 진정한 사랑으로 바꿔보려는 청순한 눈물연기도 선보이며(‘여인의 초상’), 보기 좋게 남자들을 속이는 팜 파탈(‘맬리스’)의 이미지도 어김없이 나타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영화를 통해 키드먼에게 가장 어울리는 이미지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바비 인형 캐릭터다. 금발의 요조숙녀로 변신한 키드먼의 모습은 이 미녀배우가 얼마나 변신에 능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집단의 광기가 한 개인을 어떻게 파멸시키는가 하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오즈 감독은 키드먼이라는 스타 배우의 다재다능한 연기를 통해 비교적 가볍고 경쾌하게 접근했다. 유쾌하게 웃어가면서도 나름대로 심오한 주제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영화라는 얘기다.

이 작품이 왜 미국 개봉 당시 평단에서 그토록 심하게 비난받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는 자신만의 취향과 잣대로 보는 게 최고다. 무엇보다 실제 바비 인형의 이미지를 딛고 다양한 작품을 통해 진정한 연기자로 성장한 키드먼의 갖가지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영화를 보는 데 꽤 괜찮은 부수입이다. 키드먼은 한때 톰 크루즈의 아내로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거꾸로 크루즈가 ‘한때 키드먼의 남편이었다’로 바뀌고 있는 게 아닐까. 10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