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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화나트륨 北반입]수출업자 집행유예로 풀려나

입력 | 2004-09-24 17:39:00


국내산 시안화나트륨 107t이 대구 지역의 한 무역업체에 의해 중국을 거쳐 북한에 수출된 사실이 24일 드러나자 대구지검은 당시 수사기록과 판결문을 다시 검토하는 등 진상 파악에 부산한 모습이었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이 모두 교체된 상태라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기록 등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에는 문제의 시안화나트륨이 중국으로 수출된 뒤 다시 북한으로 보내져 화학무기로 만들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아 사안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뒤늦게 문제의 화학물질이 북한으로 반입됐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대구지검에 따르면 대구의 무역업체인 W사(대구 서구 내당동)는 2003년 6월부터 9월 사이 6회에 걸쳐 부산항을 통해 수출허가 없이 중국 단둥의 현지 무역회사인 Y사로 시안화나트륨 107t(시가 1억3000만원 상당)을 수출했다.

검찰은 산업자원부로부터 이 사실을 통보받고 수사에 나서 이 업체 대표 임모씨(57)를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11월 6일 구속 기소했다.

임씨는 당시 검찰 조사에서 문제의 시안화나트륨이 북한으로 재수출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가 구입한 시안화나트륨은 서울과 경기지역의 화학물질 제조업체 두 군데에서 생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지역 무역업계 관계자들은 “W사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시안화나트륨을 수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 사건의 여파로 제3국을 통한 북한과의 교역이 위축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파장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시안화나트륨이 맹독성 가스(타분가스)를 만들 수 있는 원료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며 “사안이 심각한데도 이를 수출한 임씨에게는 단순히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형량이 비교적 낮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기자 cavatina@donga.com

▼대구 W무역업체 대표 “北에 갈지 몰랐다”▼

대구 W무역업체 대표 임모씨는 24일 “중국측 회사가 시안화나트륨의 용도에 대해 탄광의 금 제련에 사용된다는 문서를 보내와 별 의심 없이 국내의 한 화공약품 제조회사로부터 구입해 수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에 일반화공약품 수출허가를 받아 주로 중국 쪽에 시안화나트륨 이외의 화공약품을 수출해왔다”며 “이후 시안화나트륨을 수출하긴 했으나 이것이 전략물자인지도 몰랐고 북한으로 재수출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임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이 시안화나트륨이 북한으로 재수출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상반된다.

그는 “1992년 중국 다롄에 들어가 봉제공장을 하던 중 부도가 나는 바람에 대구로 돌아와 중국 무역을 시작했다”며 “중국에 광산 개발이 활발해 시안화나트륨 수요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난해부터 이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임씨는 다른 직원 없이 부인과 함께 대구 서구 내당동의 한 주택가에 사무실 한 칸을 임대해 무역업을 하고 있다.

그는 “산업자원부에 적발된 뒤부터는 화공약품 무역을 완전 중단했다”며 “지금은 나무젓가락을 미국 쪽에 조금씩 수출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호주그룹’이란▼

호주그룹(AG)은 화학 생물무기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 군비통제 기구다.

1984년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사찰단이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된 사실을 발견한 뒤 화학무기 생산에 필요한 화학물질의 수출을 통제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호주의 제안으로 화학물질 수출통제에 관한 정책 및 조치들을 공동으로 협의하기 위해 1985년 4월 호주그룹이 결성됐다.

매년 6월 프랑스 파리의 호주대사관에서 정기 회의가 열린다. 현재 38개국이 호주그룹에 가입돼 있으며 한국도 1996년 10월부터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호주그룹은 1991년 문제의 시안화나트륨을 포함해 총 54개 물질의 수출통제 대상 목록을 작성했다. 그러나 호주그룹은 ‘비공식 협의체’로서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호주그룹은 화학무기의 개발 생산 비축 사용을 막기 위해 1968년 발족한 ‘화학무기금지협약(CWC)’과도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호주그룹 회원국은 모두 화학무기금지협약 회원국이다. 하지만 호주그룹이 통제 대상으로 정하고 있는 화학물질 목록과 화학무기금지협약에서 규제하고 있는 목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시안화나트륨은 화학무기금지협약 목록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