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야가 ‘고품격 국감’과 ‘정책 국감’을 다짐했다. ‘수박 겉핥기’나 ‘한건주의식 폭로’ 같은 비생산적 구태에서 벗어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등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 국회는 다를 것이라 기대해 온 국민도 개원한 지 4개월이 지나도록 소모적 정쟁(政爭)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기대를 접고 있다. 이번 국감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면 성난 민심 앞에 여야 모두 설 자리를 잃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국감은 무엇보다 아까운 세금이 제대로 쓰였는지를 따지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민 1인당 세금 부담은 지난해 300만원을 넘어선 데 이어 내년에는 342만원에 이를 전망이다. 민생이 외환위기 때보다도 힘들다는 불경기 속에서 각종 준(準)조세까지 늘어나 납세자들의 세금고(苦)가 인내의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세금은, 민간부문에 남겨 뒀다면 서민의 생활고를 가볍게 하고 소비와 생산을 촉진하며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였을 ‘피 같은’ 돈이다. 국감이 행정부에 대해 국회의 위신을 세우거나 담당 공무원들이 단순히 문서상의 규정을 지켰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금을 써서 국민에게 제공한 서비스가 민간부문의 희생에 상응할 만한 값어치를 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세금 값’에 못 미치는 분야를 낱낱이 밝히고 개선점을 찾아내야 한다. 불요불급하거나 세금을 낭비한 분야는 차기 예산 심의 때 관련 예산을 없애거나 삭감해야 한다. 잘못 쓰이는 세금을 줄여 국민부담을 완화하고 국정의 생산적 부문에 더 많은 재원을 배정해야 경제도 살아날 것이다. 국회부터 ‘세금 값’을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