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과 원성진 5단은 2003년과 2004년 LG배 세계기왕전 4강전에서 대결을 펼쳤다. 세계 대회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원 5단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원 5단이 한번이라도 이 9단의 벽을 넘었다면 원 5단의 위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지난해 8개의 세계 대회에 출전했던 원 5단은 올해 LG배 결승 진출 실패 이후 기세가 꺾이며 20승 15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85년생 동갑내기인 최철한 9단이 12월에 열리는 잉씨배 결승에 진출하고 박영훈 9단이 후지쓰배를 차지한 것에 비하면 한 발 뒤처진 셈이다.
그러나 원 5단은 늘 최철한 박영훈 9단보다 한 발씩 늦게 성적을 내왔다. 그의 뚝심있는 기풍이 머지않아 빛을 볼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9단과 원 5단은 후반에 강한 기사들. 이런 기풍의 기사들은 후반을 도모하며 침착하게 국면을 운영하기 때문에 쉽게 결판이 나지 않는다. 이 대국에서도 제한 시간을 모두 쓰며 승부가 늦게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흑은 중국식 포석을 들고 나왔다. 백 6 때 한동안 참고 1도 흑 1로 협공하는 수가 유행했다. 수많은 변화가 있지만 흑 11까지가 보편적인 수로 자리잡았다. 물론 이후 진행도 어려워 한번 어긋나면 큰 손해가 불가피하다.
원 5단은 초반에 힘을 뺄 필요가 없다는 듯 흑 7로 평범하게 받는다. 이러면 전투 대신 포석으로 되돌아간다.
백 10 때 즉각 좌하귀 한 점을 움직이지 않고 좌상귀에 먼저 걸친 흑 11이 변화구.
백이 참고 2도 1로 받을 때 흑 4로 씌우면 백의 대응이 옹색하다. 마침 미리 교환해둔 흑 ○가 안성맞춤이다. 참고 3도의 백 1로 협공하는 것도 흑이 14까지 좌하귀와 좌상귀의 실리를 차지해 전체적으로 흑이 짭짤하다.
백 12의 반발은 당연하다. 이처럼 귀를 지킨 것은 먼저 실리를 확보해놓겠다는 뜻.
해설=김승준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