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윔블던 여자 단식 우승 직후 아버지 유리 샤라포바와 포옹하고 있는 마리아 샤라포바.
아버지는 참 바빠 보인다.
관중석에선 심각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본다. 대회 관계자를 만나 훈련 스케줄과 코트를 배정받고 테니스 라켓 줄도 대신 매 준다. 훈련 때는 라켓을 들고 코치까지 한다. 경기를 마친 딸에게 스파게티와 샐러드도 배달한다. 지극정성이 따로 없다.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17·러시아·세계8위)의 아버지 유리 샤라포바(43). 그는 한솔코리아오픈에 출전한 딸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유리씨는 1년 내내 딸과 세계를 돌며 아버지 매니저 코치 등 1인 다역을 맡는다. 샤라포바가 올해 윔블던을 석권하며 테니스 스타로 떠오른 데서 아버지 유리씨를 빼면 별로 할 얘기가 없어진다.
네 살배기 샤라포바에게 처음 라켓을 쥐여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단돈 700달러를 들고 일곱 살 난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낯선 미국으로 테니스 유학을 떠난 것도 그였다. 딸 뒷바라지를 위해 식당과 건설현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테니스 실력으로 스트로크와 발리도 가르쳤다.
유리씨는 온갖 고생 끝에 비로소 샤라포바의 성공을 지켜보며 누구보다도 기쁨이 컸다. 그래도 좀처럼 남 앞에 나서는 법이 없다. 한국에 와서도 늘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채 접촉을 피한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에요. 스포트라이트는 딸이 다 받아야 해요.”
유리씨는 아직 10대인 샤라포바를 엄하게 다룬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칭찬보다는 꾸중이나 잘못된 점을 지적할 때가 많다. 경기를 볼 때도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실수를 짚어내려고 애쓴다. 딸에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냉정하게 관전한다는 게 그의 말. 유명 스포츠 스타의 뒤에는 대개 엄격한 아버지가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에겐 얼 우즈가, ‘골프 여왕’ 박세리(CJ)는 ‘영원한 스승’ 박준철씨가 있듯이…. 언젠가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세계 정상의 스타로 올라설 수 있지만 샤라포바에게는 아직 먼 얘기. “유명해지면서 주위에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나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늘 곁에 있어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너무 감사해요.”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